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7월경 서울 서초동의 대검찰청 8층 검찰총장 집무실. 한 대검 참모가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하러 가자 송 총장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고 한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를 하면서 총장과의 상의 절차를 아예 생략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법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당시 검찰청법 34조는 ‘검사의 임명과 보직 인사는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고 되어 있었다. 검사 인사를 앞두고 관행적으로 장관이 총장과 상의하던 문화를 깨버리고, 검찰 입장에서는 상식 밖의, 법무부 입장에선 법 자구대로, 기습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 인사는 서초동과 과천 간 갈등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의도로 넘어가 국회의 검찰청법 개정 논의에 영향을 줬다. 이듬해 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16대 국회의원들은 검찰 개혁을 위한 법 개정에 머리를 맞댔다. 2000년부터 국회의원 4명이 대표 발의한 4건의 개정안, 정부가 제출한 2건의 개정안 등 6건의 법률안을 놓고 난상토론 끝에 하나의 대안이 마련됐다.
A4용지 17장 분량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명의의 대안을 읽어보면 이런 검찰 개혁 법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파격적이다. 무엇보다 검사의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직급을 일원화했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규정을 삭제하고,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이 처음 생겼다.
인사 규정도 바뀌었다. 검찰인사위원회가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됐고,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보직과 관련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관련 법안은 그해 12월 30일 오후 5시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191명의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2004년 1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이 조항은 시행 중이다.
관행적인 검찰 인사 문화가 법률로 명문화되면서 인사권을 제한받게 된 장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마침 그날 밤 청와대에서 장차관급 인사의 송년 만찬이 있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인사권을 총장과 나누게 된 강 장관이 법 개정에 관여한 검찰 간부를 독사가 개구리 보듯 쏘아봤다”고 기억할 정도로 장관에겐 언짢은 일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9일 임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은 취임사부터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를 강조했다. 그 뒤에도 인사권 행사를 마치 장관만의 고유 권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16일에는 “(가족 관련) 수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검사들의 경우 헌법 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인사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취임식 당일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은 조 장관 가족 수사의 지휘 라인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제안을 했다가 윤 총장에게 거절당했다.
검찰 인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고 세부적인 검사인사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정한 게 지난해 12월인데, 장관이 예측 가능성을 어렵게 하는 인사 발언을 자주 하니 일선 검사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검사들은 조 장관 메시지를 거꾸로 읽으면서 가족 관련 수사 라인이 추후 인사로 응징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관만의 검찰 인사권은 없다. 장관이 검사 인사에 앞서 총장 의견을 듣도록 한 건 수사 외압 행사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더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장관이 먼저 인사의 대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15년 넘게 시행돼 온 만장일치 법의 정신을 조 장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 건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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