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맛까지 살렸다” vs “진짜 고기 아냐”… 식물육이 불붙인 ‘고기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9일 03시 00분


[글로벌 현장을 가다]
채식 틈새시장서 버거 간판 메뉴로 대량생산 가능한 실험실 고기 개발
농가 반발-규제 미비 갈등 요인… 식물육 인기, 한식 세계화 기회로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햄버거 체인점 버거킹에서 고기 특유의 식감과 고기 맛을 살린 ‘식물육’ 햄버거를 판매하고 있다. 식물육은 육식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고 육류 소비 증가를 감당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햄버거 체인점 버거킹에서 고기 특유의 식감과 고기 맛을 살린 ‘식물육’ 햄버거를 판매하고 있다. 식물육은 육식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고 육류 소비 증가를 감당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15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34번가 햄버거 체인점 버거킹. 지하철역 쪽 입구, 직원의 티셔츠, 메뉴판 모니터 등 매장 곳곳에 신제품 햄버거 광고가 요란했다. 쇠고기 대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임파서블푸즈(Impossible foods)’가 개발한 ‘식물육(plant-based meat)’ 패티를 쓴 햄버거였다. 매장 직원은 “손님들이 진짜 고기보다 맛있다고 좋아한다”며 연신 이를 권했다. 선홍빛이 도는 패티 속살과 노릇노릇하고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표면이 일반 쇠고기 패티와 비슷했다. 맛은 어떨까.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고기 특유의 식감과 고기 맛이 한껏 느껴졌다. 별도 표시된 포장지가 아니었다면 일반 햄버거와 구별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올해 7월 이 식물육 햄버거를 선보인 버거킹은 지난달 판매망을 미 전역 7300여 개 매장으로 확대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특별 음식’쯤으로 여겨지던 식물육이 ‘육식의 대명사’ 햄버거 시장까지 접수한 셈이다.

○ “채식은 맛없다”는 고정관념 깨

또 다른 햄버거 체인 칼스주니어는 올해 1월 임파서블푸즈의 라이벌 ‘비욘드미트(Beyond meat)’와 손잡고 식물육 메뉴를 선보였다. 도넛 전문점인 던킨도 7월 뉴욕 시내 160개 점포에서 식물육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했다. KFC도 ‘식물육 너깃’을 시험 판매하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5시간 만에 일주일 치 재료가 동나기도 했다.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은 ‘정크 푸드’ 비판을 받던 햄버거와 도넛이 식물육과 결합해 ‘헬스 푸드’로 변신을 꾀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임파서블푸즈와 비욘드미트의 식물육을 사용하는 미국 내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레스토랑은 현재 2만여 곳에 이른다. 미 식물기반식품협회(PBFA) 등에 따르면 4월 현재 미 식물기반 식품 매출은 45억 달러(약 5조4000억 원)로 2년 전에 비해 31.3% 늘었다.

1980년대 등장한 콩, 두부로 만든 1세대 ‘대체육(alternative meat)’은 고기를 싫어하는 채식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맛은 진짜 고기와 상당한 차이가 있어 육식파 소비자까지 사로잡진 못했다. 이 고정 관념을 깬 기업이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즈다.

2009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등장한 비욘드미트는 콩, 쌀, 식물성 단백질 등 다양한 재료로 육류 특유의 식감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붉은색 채소 비트를 사용해 불그스름한 고기 색까지 재현했다. 비욘드미트의 제품은 홀푸즈 등 미 주요 식품매장의 채식 코너가 아닌 육류 코너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등 진짜 고기와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올해 5월 나스닥 상장으로 전 세계에 ‘식물육 돌풍’도 일으켰다.

임파서블푸즈는 2011년 채식주의자인 스탠퍼드대 생화학과 교수 패트릭 브라운이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에서 설립했다. 동물 혈액에 있는 ‘헴(heme)’이란 비(非)단백질 분자를 콩류에서 추출해 고기 맛을 냈다. 맥주 효모에 ‘헴’을 만드는 콩 유전자를 유전공학 기술로 결합시킨 결과다. 브라운 교수는 고객에게 보낸 서한에서 “동물을 쓰지 않고 고기 맛, 향, 식감, 육즙이 있는 고기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가 찾은 답이 ‘헴’”이라고 밝혔다.

○ 온난화 및 인구 증가 해결사로도 주목

전통 육류 가공회사들도 속속 식물육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근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가공회사 스미스필드푸즈, 세계 2위 육가공회사인 타이슨푸즈가 식물육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타이슨푸즈는 이미 비욘드미트의 지분 6.25%도 보유하고 있다. 식품업체 네슬레도 관련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으로 새우와 랍스터 등을 만드는 ‘식품 기반 해산물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타이슨푸즈는 해초를 이용해 새우를 재현하려는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뉴웨이브푸즈에 투자했다. 미셸 울프 뉴웨이브 공동 창업자는 WP 인터뷰에서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채식을 주로 하지만 육류, 해산물도 먹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식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1세대 ‘대체육’, 2세대 ‘식물육’에 이은 3세대 미래 식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실험실 고기’를 꼽는다. 살아 있는 동물에서 추출한 동물 세포를 배양해 쇠고기, 닭고기, 해산물 등을 대량생산하겠다는 아이디어다. 기후 변화로 전 세계 경작지가 급속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세계 인구 및 육류 소비 증가를 감당하려면 혁신적인 대량생산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일각에서는 2050년경 실험실 고기가 세계 육류 소비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문제는 복제 고기의 맛과 생산 가격. WP에 따르면 최근 이스라엘 회사 랄렘프 팜스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기 생산 단가를 파운드당 100달러 선에 맞췄다. 미 기업들은 이를 다시 50달러로 떨어뜨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실험실 고기를 연구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 26곳, 미국에만 9곳이 있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이자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으로 극심한 공급 부족을 겪는 중국도 실험실 고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고기 전쟁… 한식에는 새로운 기회

대체식품 급성장에 따른 논란 및 영역 다툼도 한창이다. 시장조사회사 지온마켓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119억 달러인 세계 식물육 시장은 2025년 212억 달러로 2배 가까이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80만 미국 목장주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공장에서 만든 식물육과 실험실 고기가 기존 고기 시장을 잠식한 탓이다. 축산농가 단체들은 아몬드, 귀리 등 식물성 대체 유제품에 시장을 빼앗긴 우유 시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미 50개 주 중 30개 주에서는 전통 방법으로 사육하거나 도살하지 않은 동물에서 나온 고기가 아니면 ‘고기, 버거, 소시지, 육포, 핫도그’ 같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중부 미시시피주는 “배양된 동물 세포, 식물 기반, 곤충 기반 음식은 고기 및 고기 제품으로 표시하면 안 된다”고 금지하고 있다. 인근 미주리주도 이 법을 위반하면 1000달러 벌금 및 1년의 징역형을 부과한다. 식물육을 반대하는 이익단체들은 ‘고도로 가공 처리된 식품이어서 유전자 변형식품(GMO)의 일종이나 다름없다’ ‘또 다른 정크 푸드여서 건강과 거리가 멀다’고 공격한다. 이런 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하는 신문 광고도 심심치 않게 게재하고 있다.

식물육 기업들도 반격에 나섰다. 1980년 창업한 1세대 채식 브랜드 ‘토퍼키’ 등 채식 지지 단체 및 기업들은 7월 식물육에 대해 고기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한 남부 아칸소주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냈다. 미 수정헌법 1조와 14조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대체육 거품’ 논쟁도 뜨겁다. 일각에서는 신상품 특성상 식물육이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받아 실제 가치보다 과대평가됐다고 주장한다. 또 스타트업이 많다 보니 일부 회사는 생산 역량이 부족해 소비자에게 제때 물건을 납품하지 못한다. 유전자 조작 및 세포 배양 등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미 당국은 식물육 회사들과 축산농가의 갈등이 커지자 관련 법규를 손질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식품의약국(FDA), 농무부 등 주요 담당 부처의 책임 소재 및 관할, 대체육의 정의 및 표시 방법 등을 총망라한 제도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식물육과 채식주의 인기는 채식 요리에 강점을 보이는 한식에 상당한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뉴욕시는 학교나 병원 등에서 채식 식단을 권장하는 ‘고기 없는 일요일’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자우마 비아르네즈 샘표 뉴욕 연두컬리너리스튜디오 수석 요리사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채소 섭취율이 1위인 이유는 식물로 만든 한국의 장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장을 활용한 식물 기반 요리를 제안한다면 한국 식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대체육#식물육#채식#실험실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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