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美사령부서 본 한미동맹… 美 印太사령부, 지구의 절반 담당
中을 ‘강압적 질서 파괴자’ 규정… 한국은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봐
美, 한국의 대북-대중정책 의심… 전작권 전환-방위비 갈등도 뇌관
66년 동맹 쉽게 깨지진 않겠지만 초불확실성 시대 굳게 대비해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래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걸고 첫 조치로 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미 국방부가 올 6월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미국이 직면한 4대 도전으로 △패권을 추구하는 도전자 중국 △되살아난 악성 방해자 러시아 △불량국가 북한 △테러, 불법무기, 해적 같은 초국가적 과제를 꼽았다. 특히 중국은 경제·군사적 굴기를 통해 패권을 추구하면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렇듯 미국의 새 전략은 중국 러시아 북한을 핵심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동맹인 한국은 이런 미국의 전략에 동의하고 함께 행동할 태세가 돼 있는가. 동맹의 전제는 공동의 위협에 있다. 과연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 나아가 휴전선 너머 북한을 겨냥한 공세적 전략에 ‘같이 갑시다’라고 외칠 수 있는가. 당장 미국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 미국에 도전하는 ‘파괴자’ 중국의 굴기
지난주 나흘에 걸쳐 인도태평양사령부와 그 예하 사령부들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하와이 주도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에는 진주만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사령부와 태평양함대 및 공군, 육군, 해병대 등 4개 구성군사령부가 들어서 있다. 그 관할구역은 흔히 ‘할리우드부터 발리우드까지, 북극곰부터 남극펭귄까지’라고 표현되듯 전 지구의 51%에 달한다.
태평양함대에선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과 이지스급 구축함, 태평양해병대에선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에도 직접 올라 살펴볼 수 있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슈퍼파워 미국을 지탱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그런 물리적 파워야말로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국제질서를 만드는 지도국가로서 위상을 지키는 바탕일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유주의 제국을 구가하던 미국이지만 최근 거대한 도전들에 직면했다. 특히 인도태평양에는 보유 병력 상위 10개국 중 7개국, 핵무장 8개국 중 5개국, 미사일 보유 상위 4개국 중 3개국이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미국은 중국이 단기적으론 지역 패권국, 궁극적으론 글로벌 우위 국가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고 본다.
이번에 방문한 각 사령부 브리핑에서도 ‘중국 견제’가 핵심적 목표임을 감추지 않았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선 중국과 충돌 일보 직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군 관계자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활동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국의 반발에 대해선 “우리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 공군 관계자는 중국을 ‘강압적으로 기존 질서를 깨는 파괴자’라고 규정했다. 남중국해에 인공 섬을 만들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은 경계의 대상이다. 최근 독도 영해 침범사건에서 보듯 중-러의 연합훈련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 금가는 한미동맹, 높아가는 미국의 의구심
각 사령부가 매번 브리핑 때마다 사용하는 지도는 한결같이 하와이를 중심으로 두고 태평양 인도양 북극 남극을 포괄하는 지구의 절반이었다. 수없이 등장하는 지도에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지정학적 시각이 엿보였다.
특히 하와이에서 동북아시아를 바라볼 때 한반도는 일본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 그리고 대만을 거쳐 필리핀을 잇는 미국의 방어 제1선 바깥에 있었다. 한반도는 그 방어선과 중국 대륙 사이에 내해(內海)처럼 보이는 곳에 끼어 있었고, 남과 북이 갈라져 다른 색깔로 칠해진 경계구역 또는 완충지대(버퍼존)로 보였다.
물론 북한의 위협에 맞선 한국 방어는 인도태평양사령부의 핵심 임무다. 북-미 간 협상에 의한 외교적 해결이 모색되고 있지만 미군은 언제든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준비태세를 확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전략, 특히 중국의 팽창에 맞선 봉쇄전략 측면에서 한국의 입장을 두고선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제복 입은 군인들은 한미동맹의 가치만을 거듭 강조했지만 하와이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장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미 간 엇박자가 노출되고 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른, 나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둘러싼 균열은 한미동맹의 지속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미 의회가 설립한 동서문화센터의 데니 로이 박사는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남한과의 대치를 포기하고 번영을 꾀할 것으로 가정하지만 과연 그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제임스 미니크 예비역 대령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동맹에 대해선 한국의 입장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그 이후 한미는 어떤 동맹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군 대장이 한국군 대장의 지휘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로이 박사는 “미군이 외국군 지휘 아래 있던 적은 없는 만큼 정서적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관의 정전협정 관리 권한을 내세워 지휘권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 한일 갈등이 증폭시킨 한미동맹 경고음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역을 도구로 삼은 것은 문제라면서도 이것이 지소미아 종료라는 안보 문제로 확대된 데 대해 “한미일 3각 공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랄한 비판은 삼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매우 실망스럽다”는 공식 논평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역할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크리스티 고벨라 하와이대 교수는 “보복의 악순환을 깨기 위해 미국이 중립적 시작점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와 얽혀 있어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한국이 한미일 3각 체제에서 벗어나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한국의 대통령특보가 한일 갈등과 관련해 미국 대신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마당에 미국은 한국이 중국 쪽에 기운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상협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인들은 미중 간 무역전쟁에 대해 한국으로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라고 말하면 무척 싫어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한미 간 인식차가 한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정책 혼선 탓에 전문가들도 향후 미국의 대외전략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앞으로 미중 전략 경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북핵 해결은 그 어떤 전망도 섣부른 예측 불가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 속에서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66년 동맹이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런 초불확실성에 얼마나 대비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데이비슨 美 인도태평양사령관 “한미일, 장기적 위협에 함께 맞서야”▼
필립 데이비슨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해군 대장·사진)은 북한의 핵 위협을 가장 먼저 꼽으면서도 중국을 ‘가장 큰 장기적 전략적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국제질서를 멋대로 왜곡하고 파괴하며 궁극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동맹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맹의 깊이는 경제를 초월한다. 앞으로 협상자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보자.”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국은 유엔군사령관으로서 권한을 행사하려는 듯한데….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이 3개의 모자(주한미군·한미연합사·유엔군사령관)를 쓰고 있지만 미국에선 흔한 일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사는 한국군 사령관 아래 놓일 것이지만 에이브럼스 장군은 유엔군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중요한 권한을 보유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안보와 관련해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한미일 3국은 장기 전략적 위협에 맞서 함께해야 한다. 한국 일본과 각각 양자적으로든 한미일 3자적으로든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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