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일요 휴무제[횡설수설/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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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주말이 더 바빠. 문법 특강 있어.” “나도 학원 있는데….” 최근 동네를 걷는 중에 앞서 걷는 초등생 둘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주말에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투덜거리는 소리였다. ‘얼마나 놀고 싶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학원 정보에 어두운 직장맘은 학원명이 궁금해져 귀가 쫑긋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원 일요 휴무제를 추진한다. 단 하루만이라도 학생들의 휴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여론조사, 토론회 등 공론화를 거쳐 11월 중 시민참여단이 권고안을 마련한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원 격주 휴무제를 공약했으나 ‘풍선효과’가 크고 현실성이 낮다는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조 교육감이 학원 일요 휴무제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면서 ‘스라밸(공부와 삶의 균형)’도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늘었으며, 왜 학생들만 ‘월화수목금금금’인지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분석한 ‘학생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주당 학습시간은 49.4시간으로 OECD 평균(33.9시간)보다 15.5시간이 많다. 당연히 행복지수는 밑바닥이다. 학생들의 쉴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학원 일요 휴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는 ‘한국의 역설’이 숨어 있다. 한국은 주당 60시간 이상 공부한 학생이 주당 40시간 미만 공부한 학생에 비해 학업성취도(과학 점수)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동시에 높은 유일한 나라였다. 한국 학생들만 유독 공부를 좋아하는 유전자를 타고났을 리는 없고, 인생 단계마다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시스템에 적응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일 거다.

▷이런 사회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학원 일요 휴무제를 시행하면 기대했던 효과는 없고 괜히 행정력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미 10년 넘게 오후 10시 이후 학원 교습을 금지한 조례가 시행됐지만 아이들이 일찍 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음성적인 개인과외, 그룹과외가 성행한다는 반론도 있다. 아이가 일요일마저 학원에 매여 있는 나라도, 당국이 학원을 일제히 휴무하게 하는 나라도 지구상에 드물 것이다. 서울시내 학원 2만여 곳을 일일이 규제하고 단속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배제한 일률적인 법제화보다는 더디더라도 ‘잘 놀면 잘 큰다’는 당연한 이치가 통하는 사회로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학원 일요 휴무제#서울시교육청#풍선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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