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은 왜 둥글까[서광원의 자연과 삶]〈9〉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30일 03시 00분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당연한 듯한 것에 “왜?”라고 해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뭇잎은 왜 사각형이 아니라 삼각형 모양의 유선형일까? 조금 더 둥글고 조금 더 긴 게 있지만 나뭇잎들은 대체로 길쭉한 삼각형이다. 풀잎도 마찬가지다. 원래 그럴까? 살아있음의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 식물의 잎은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받기 위한 것이다. 가능한 한 넓어야 하지만 마냥 그럴 순 없다. 태풍 같은 거친 바람에 쉽게 찢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작게 만들면 햇빛 받는 게 여의치 않다. 모든 생명체가 겪는 딜레마를 식물도 겪었다. 햇빛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잘 찢기지 않을 순 없을까? 그래서 만들어낸 게 유선형 모양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찾은 최적화된 형태다.

이뿐인가? 잎은 또 ‘최소 비용 최대 효과’라는 경제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많은 잎을 만들려면 얇으면서도 질겨야 한다. 얇으면서도 질긴 잎? 이거야말로 모순 아닌가? 식물은 여기서도 적절한 해법을 찾아냈다. 가느다란 잎맥을 만들어 강도를 높이고 가능한 한 수평으로 위치하기로 한 것이다. 최대 위기인 바람이 주로 수평으로 불기도 하거니와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인 까닭이다. 그래서 잎들은 세로로는 쉽게 찢기지만 가로로는 잘 찢기지 않는다. 세상 모든 걸 날려버릴 듯 부는 거친 태풍도 여린 잎 하나를 떨구지 못한다. 나뭇잎 하나, 풀잎 한 장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닌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가진 모양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면 요즘 같은 가을에 주렁주렁 열리는 과일도 그럴까? 과일은 왜 다들 둥글까?

물리적으로 동그란 형태(球)는 부피 대비 표면적이 가장 작다. 열매를 둥글게 만들면 생존의 핵심 요소가 아닌 껍질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또 땅에 떨어졌을 때 어디로든 굴러갈 수도 있다. 잘 굴러갈수록 어미 나무 그늘 밑을 벗어나 제대로 잘 자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사실 알이 둥근 것도 껍질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함인데, 알은 과일과 달리 한쪽을 약간 크고 무겁게 만들어 마냥 굴러가지 않도록 한다. 그래야 둥지를 벗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우리 눈에 익숙하니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다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생존전략의 결과다.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어떤 모양을 만든다. 표정이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만든다. 둥글둥글한 사람도 있고 모가 난 사람도 있고 뾰족한 가시 같은 사람도 있다. 둥글둥글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모가 났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 맞는 모양을 가지고 있느냐, 또는 자신이 가진 모양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돌담을 쌓을 때 둥글둥글한 돌만 있으면 담을 쌓을 수 없다. 담을 쌓을 땐 모난 돌이 제격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양이고,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을까? 내 모양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과일#광합성#햇빛#과일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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