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만드는 꼰대의 위기[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9〉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가을 수련회 취소됐대.” 우리 집 초딩이 가방을 팽개치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1박 2일로 예정된 수련회가 갑자기 당일치기 현장학습으로 바뀌었다나 뭐라나. 몇 달 전 우리 초딩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표정으로 가정통신문 한 통을 건넸다. 그동안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는 줄도 몰랐는데, 그날은 집에 오자마자 자기가 먼저 가정통신문부터 공손하게 건넸던 것이다.

5학년 가을학기 행사로 1박 2일 수련회와 당일치기 현장학습 중 어느 쪽이 좋겠냐는 설문조사였다. 아내와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1박 2일 수련회에 동그라미를 그려 돌려보냈다. 모처럼 데이트나 하자며 우리 초딩 못지않게 설레는 마음으로 수련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른 집 학부모는 대부분 당일치기 현장학습을 선택한 모양이다. 수련회 취소는 학부모 반대로 어쩔 수 없다는 담임선생님 말씀에 우리 초딩과 같은 반 친구들은 나라 잃은 백성처럼 장탄식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학부모의 선택이 일면 이해는 간다. 요즘에는 학교 단체 활동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과외활동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게다가 들뜬 아이들을 교실 밖에서 한꺼번에 통제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초딩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5학년쯤 됐으면 알아서 다 잘하는데, 수련회를 원하는 ‘당사자’들의 선택은 왜 존중받지 못하냐며 억울해했다. 마침 우리 초딩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재밌게 읽은 터였다. 단지 친구들과 함께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만으로 우리 초딩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는 얘기다. 막상 가보면 살인사건을 목격하거나 인디언 조가 숨겨둔 금화를 발견할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만일 수련회가 장차 대입에 도움이 된다면 어땠을까. 대부분의 학부모는 1박 2일이 아니라 1년짜리 수련회도 기꺼이 찬성하지 않았을까.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 서문에서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그 시절이 가끔씩 얼마나 이상했는지 기분 좋게 추억하기 바랐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자라서 대체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사실 톰 소여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의 ‘나 때는 말이야’에 불과하다. 그나마 마크 트웨인은 ‘나 때는 말이야’ 뽐낼 만한 자기만의 모험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던 꼰대다. 그에 비해 부모가 그려준 생애주기를 따라가기 바쁜 아이들은 애초에 꼰대가 될 기회조차 빼앗긴 셈이다. 그 아이들은 자기만의 모험을 통한 꼰대가 되는 대신 각종 스펙으로 좋은 대학 진학하는 모험이나, 탈세하고 안 걸리는 모험 따위를 물려받는다. 그렇게 꼰대가 되지 못한 아이들은 이미 꼰대가 된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꼰대는 그대로 멸종할 수밖에 없다. 결국 꼰대의 위기는 꼰대가 자초하고 있다.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