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브랜딩’의 시대다.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개성 넘치는 프로필 사진들이 넘친다. 16세기의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놀랍게도 현대의 셀프 브랜딩 개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화가로서의 기량뿐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과시하는 자화상을 그려 스스로를 알리고자 했다.
1471년 뉘른베르크의 가난한 금세공사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잇지 않고 화가가 됐다. 그림 실력뿐 아니라 자의식도 강했던 그는 13세 때 서양미술사 최초의 자화상을 그린 이후 평생 여러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중 28세 때 그린 이 자화상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셀프 브랜딩의 완결판이다. 얼굴과 몸의 완벽한 좌우대칭,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손질된 머리와 수염, 정면을 응시하는 강렬한 눈빛, 고급스러운 모피코트, 자신을 가리키는 손 모양 등이 강조된 이 그림은 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는 그리스도의 도상과 비슷하다. 화가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초상을 닮은 자화상을 통해 신과 같은 창조자의 지위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뒤러는 저작권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다. 그는 1490년대부터 작품에 서명을 시작했는데, 이 그림 배경 왼쪽에도 새겨져 있다. 뒤러의 이름 앞 글자 A와 D를 합친 이 마크는 그가 제작한 모든 회화와 판화 작품들에도 새겨져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뒤러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유명 브랜드가 됐다. 배경 오른쪽에는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울 수 없는 색으로 나를 그렸다’는 문구가 있어 그의 작품임을 이중으로 증명하고 있다.
하찮은 장인에 지나지 않았던 화가의 지위를 지식인이자 존경받는 창조자의 반열로 끌어올렸던 뒤러는 생전에 부와 명성을 누렸고 사후에는 데스마스크가 만들어지고 머리카락이 보관되는 등 성인처럼 신격화됐다. 셀프 브랜딩으로 미술의 불모지 독일에 르네상스 미술을 꽃피웠던 뒤러. 이제 그는 가장 위대한 독일 미술가로 칭송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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