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일 03시 00분


“김태우 폭로는 희대의 농간”이라는 조국 당시 민정수석 발언 못 믿겠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실로 드러나
청와대, 왜 드루킹 특검에 관여했나 윤석열 검찰은 철저히 파헤쳐야

김순덕 대기자
김순덕 대기자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가 아니라 ‘남자 박근혜 정부’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제왕적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거의 비슷하게, 심지어 더 고약하게 따라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괴롭다.

박근혜 정부 2년 차 때 비선 실세 의혹을 폭로한 사람이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이었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엔 민정수석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 김태우가 정권 실세 의혹을 폭로했다.

작년 12월 31일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국회에 출석해 “사태의 핵심은 김태우 행정요원이 자신의 비리 행위를 숨기고자 희대의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너무나 단정하고도 단호한 모습으로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이전 정부와 다르게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 바람에 설마 민정수석이 거짓말하랴,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겠다고 조국이 온 국민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을 말한 것을 보니 그때 그가 했던 말도 거짓이라는 의심이 든다. 김태우는 억울했을 것이다. 김태우가 폭로하고 조국이 부인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최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놓고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4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태우가 폭로했던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사건은 뭉개버렸으나 ‘조국 사태’ 이후 바짝 수사 중이다.

희대의 농간은 김태우가 아닌 조국이 부렸다는 정황이 짙어졌으니 ‘공익신고자’ 김태우의 주장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관천이 폭로했던 정윤회 문건을 당시 제대로 수사했다면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조국도 민정수석 시절 장담을 했다.

김태우는 2월 유재수 건 검찰 고발과 함께 “청와대가 드루킹의 대선 댓글 여론조작에 대한 특검 수사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며 조국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2018년 7월 25일 오전 11시 11분 특감반장 이인걸이 검찰 출신 특감반원 4명에게 텔레그램 단체방에 드루킹이 60기가바이트 분량의 USB를 특검에 제출했다는 언론 기사를 링크해 올리며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라고 했고, 정확히 13분 후 박모 특감반원이 내용을 보고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 것을 보면 거짓말일 것 같지가 않다.

유재수 부시장 건은 금융위원회 국장 시절 금품과 청탁을 받았다는 첩보를 청와대 직권으로 무마시켰다는 정도지만 청와대가 드루킹 수사에 개입했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201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대선 개입했다고 재판받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대선에 민간인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벌인 것도 모자라 대선 승리 후 청와대가 관여했다면 국기 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김태우는 “증거자료인 텔레그램 대화 내용은 서울동부지검에서 확보하고 있고, 해당 자료는 수원지검에서도 보관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검찰은 즉각 드루킹 특검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특검 수사를 청와대의 누가 그렇게 궁금해했는지, 적잖은 국민이 궁금해하고 있다.

조국은 김태우 때문에 국회 출석한 자리에서 “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조국의 책략이 이기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정의당 당원인 동양대 진중권 교수가 “신뢰하던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며 윤리적으로 완전히 패닉 상태라고 했겠나.

“청와대는 문재인 정권에 친화적인 인사들의 비위는 묵인했다”는 김태우의 말대로 이 정권의 국정농단은 아직 감춰져 있을 공산이 크다. 남북경협을 예상하고 북한 골재 채취 권한을 약속한 집권당 중진 의원이 누군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비리 의혹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통령 주변 비리 등 특감반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첩보를 조국이 보고받아 문재인 정부의 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됐고, 그래서 대통령이 내치지 못한다는 소문이 맞는 듯하다.

홍위병은 검찰을 흔들고 야당은 무력한 상태다. 책략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조국의 말만은 믿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박근혜#문재인#조국#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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