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출신 배우 배수지(25·이하 수지)는 예쁘면서도 ‘민간인스러운’ 매력이 만점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2012년)으로 일약 스타배우가 된 것도 이런 자연미 덕택이다. 그런데 요즘 TV 드라마 ‘배가본드’를 두고 수지의 연기가 ‘옥에 티’라며 입 도마에 올랐다. 물론 잘하는 연기는 아니지만, 예쁘면 됐지 뭘 더 바라나. 수지가 꽃길만 걷길 바라는 아저씨의 염원에서, 그녀의 더 나은 연기를 위한 원 포인트 레슨을 해드린다.
[1] 3회. 비행기 추락 원인이 테러라고 주장하는 이승기와 함께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던 국정원 요원 수지. 적의 독침 기습을 받은 승기가 쓰러지자 “달건 씨. 왜 그래!”라며 수지가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다.
오 마이 갓! 이 긴박한 순간에 머리를 왼손으로 쓸어 넘기며 귀를 보여주는 수지. 수지야. 지금은 메소드 연기를 해야 할 때야. 사람이 죽어가는데 머리 넘길 여유가 어디 있니. 흘러내린 머리칼에 예쁜 얼굴이 가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팬 서비스임을 모르지 않지만, 이건 절박함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보이지 않겠니.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기억하렴.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나를 내려놓을 때 연기는 살아난다.
[2] 1회 첫 부분. 해외 공관 인턴 직원으로 위장한 블랙요원 수지가 영사관 방에 몰래 설치했던 카메라를 회수하려는 순간. 남자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정체가 발각될 위기다. 이때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스타킹을 쥐어뜯은 뒤 매끈한 다리를 내보이면서 “아, 스타킹 올이 나갔네” 하며 상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위기를 모면한다.
수지야. 상대를 앙증맞게 흘겨보면서 흰자위를 노출하는 것까진 아주 좋았어. 하지만 이때 무념무상의 얼굴을 해선 안 돼. ‘나 요염하지?’ 하는 유혹적인 표정을 시청자는 기대한단다. 장르적 연기란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시청자가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 감정을 전형적인 몇 개의 표정으로 보여주는 거야. 잊지 마. 수지야. 연기는 시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소통)이야. 연기자의 표정은 신호이자 기호이고 약속이란다.
[3] 3회. 여객기 블랙박스에서 테러의 증거를 찾아낸 수지가 전화통화에서 “비행기, 테러당한 거야!”라며 승기에게 처음으로 확인해주는 극적인 순간.
아잉, 수지야. 아저씨 속이 너무 상해. 표정이 밋밋하잖아.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는 순간에 수지는 어떻게 ‘너, 오늘 이 언니가 아끼는 옷 입고 나갔니?’ 정도의 표정을 짓는 거니. 지금 수지에겐 하나의 감정을 0에서 10까지 여러 단계로 나눈 뒤 섬세한 차이를 표정으로 지어보면서 표정을 심화해가는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 ‘거의 안 놀람-아주 약간 놀람-약간 놀람-놀람-아주 많이 놀람-화들짝 놀람-미친 듯이 놀람-분노한 듯이 놀람’처럼 감정의 등급을 촘촘히 나누고 층위별로 연습해보렴.
[4] 4회. 수지, 승기, 그리고 국정원 동료 직원(황보라)이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는 장면. 승기와 황보라가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끼인 수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아, 수지야. 이건 망한 표정이야. 명배우는 자기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제 표정과 감정을 관리하는 주도면밀함을 가져야 해. 나 같은 아저씨들은 승기가 뭔 말을 하든, 황보라가 뭔 말을 하든 계속 수지만 보거든. 카메라가 도는 순간엔 코털까지 연기인 거야. 뒷모습까지 ‘표정’을 짓는 게 진짜 배우란다.
[5] 하지만 수지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믿어. 4회. 회식 자리에서 만취한 채 직장 상사인 팀장에게 “넌 내 꼬(거)야”라고 실언하는 장면을 보고 아저씬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너무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이 눈빛 연기를 어쩔 거야. 이것 봐. 수지도 하면 되잖아. 앞으론 계속 취해버린다고 생각하자. 타인의 인생과 영혼에 좌고우면 안 하고 취해버리는 게 바로 연기잖아. 우리 수지, 꽃길만 걷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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