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 안전검증 안돼… 생체실험 하자는 것”[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4일 03시 00분


원전사고 현장 7년만에 다시 가보니
방독마스크-장갑 3개 ‘중무장’… 오염수 처리하는 시설 들어가
정화한 물도 삼중수소 농도 높아… 도쿄전력 “인체에는 큰 문제 없어”
과학자들 “위험성 아직 검증 안돼 10, 20년 지나서야 판단 가능해”
日어민들도 “이미지 타격” 반대… 독성물질 스트론튬도 방출 가능성
“100년간 탱크 보관이 현실적 해법”

2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진복과 방독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착용한 한국, 독일, 베트남 등 기자들이 오염수를 정화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 가동실로 가는 버스에 탑승해 있다. 원전 내부의 97% 지역은 방독면 없이 다닐 수 있지만, 오염수 관련 시설을 출입할 때는 반드시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폴라리스이미지 제공
2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진복과 방독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착용한 한국, 독일, 베트남 등 기자들이 오염수를 정화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 가동실로 가는 버스에 탑승해 있다. 원전 내부의 97% 지역은 방독면 없이 다닐 수 있지만, 오염수 관련 시설을 출입할 때는 반드시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폴라리스이미지 제공
2일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오쿠마(大熊)정 후쿠시마 제1원전. 약 7년 만에 다시 찾은 원전은 어느덧 바뀌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변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원전 폭발 사고 후 1년 7개월이 지난 2012년 10월, 한국 언론사들은 처음으로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원전 부지 안의 모든 작업자는 방진복을 입고 방독마스크, 장갑, 장화를 착용했다. 기자들도 동일하게 중무장했다. 당시엔 사람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올라탄 버스는 사고가 난 원자로 1∼4호기 인근에 도착했다. 2012년 4호기 옆 방사선량은 시간당 1000μSv(마이크로시버트·이하 방사선량은 모두 시간당)였지만, 이날은 53μSv였다. 마이크로시버트는 방사선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단위다. 사람의 연간 인공 방사선 피폭 한계는 1000μSv. 원전 사고 후 제염 작업과 방사성 폐기물 정리가 끝나면서 원전 내 공기질은 개선됐다. 원전 내 97% 지역은 방독면 없이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새 과제를 앞두고 있다. 매일 150t씩 늘어나는 오염수 처리 문제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하라다 요시아키(原田義昭) 전 환경상 등 일본 고위 인사들은 최근 공개적으로 오염수 해양 방류를 언급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해양 방류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 도쿄전력 “이중 정화 후 해양 방류”

후쿠시마 원전의 사무 빌딩으로 들어갔더니 도쿄전력 측에서 갑자기 보호장비를 나눠 줬다. 방진복을 입고 장갑을 3겹으로 꼈다. 양말 역시 3겹으로 신었다. 방독마스크를 쓰고 헬멧까지 착용했다. 갑자기 과거처럼 중무장을 했다.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방문한 곳은 ‘다핵종(多核種)제거설비(ALPS)’ 가동실이었다.

ALPS는 방사성 핵종을 제거할 수 있는 일종의 여과시설이다. 오염수는 여기에서 정화돼 저장탱크로 보내진다. 자칫 오염수에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중무장을 한 것이다. 도쿄전력 측은 “ALPS 1대가 하루 250t의 오염수를 처리할 수 있다. 3대가 있으니 750t까지 처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인 세슘, 스트론튬 등이 L당 약 1000만 Bq(베크렐·방사성물질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삼중수소가 약 120만 Bq 포함돼 있다. ALPS를 거치면 세슘과 스트론튬은 1Bq 이하로 제거된다. 하지만 ALPS는 삼중수소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ALPS 저장실에서 나와 방사능 검사실로 갔더니 올해 8월 1일 채취된 이른바 ‘처리수’(ALPS를 거쳐 정화된 오염수를 도쿄전력이 부르는 용어)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용기 포장지에는 ‘트리튬(삼중수소) 농도 120만 Bq/L’이라고 적혀 있었다. ALPS를 거친 처리수지만 여전히 삼중수소의 농도는 높았다.

도쿄전력 측은 “정상 가동하는 원전에서도 L당 120만 Bq보다는 농도가 낮겠지만 삼중수소가 배출된다”고 말했다. 이어 “삼중수소는 사람이 섭취해도 축적되지 않고 배출된다. 먹어도 큰 문제가 없다”며 “트리튬에 바닷물을 섞어 기준치(6만 Bq) 이하로 희석해 바다로 내보내면 별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말 도쿄전력의 설명대로 보기에 어려운 대목이 많다.

○ “해양 방류는 생체실험 하자는 것”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사고로 인한 삼중수소와 정상 가동된 원전에서 배출되는 삼중수소를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사고로 인해 배출된 삼중수소 오염수에 대해선 충분히 위험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가 많다. 후쿠시마에서 진료소를 운영하는 후세 사치히코(布施幸彦) 원장은 “(삼중수소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면) 그 자체가 생체실험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삼중수소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른다”며 “방류 후 10년, 20년이 지나서야 추계할 수 있다. 삼중수소 오염수를 절대 방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어민들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2일 오전 후쿠시마현 남측에 위치한 오나하마(小名濱) 어시장에는 당일 잡은 생선들이 속속 들어왔다. 2011년 원전 사고 직후에는 조업이 완전 금지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험조업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매일 약 50어종을 잡는데, 어종별로 한 마리씩 방사능 검사를 한다. 마에다 히사시(前田久) 오나하마저인망어업협동조합 차장은 “(오염수 해양 방류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매주 150마리에 이르는 생선의 방사선량을 검사하는 후쿠시마현수산해양연구센터 가미야마 교이치(神山亨一) 방사능연구부장은 “2015년 4월 이후 기준치(kg당 100Bq)를 넘는 생선이 한 마리도 없었다”며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해양 방류를 하면 안 된다. 어민들은 거의 100%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언론인 후쿠시마민보와 후쿠시마TV가 지난달 28일 현민 703명에게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반대가 38.4%, 찬성이 30.3%였다.

○ 삼중수소 이외 핵종 유출도 우려

지난해 9월 도쿄전력은 ALPS를 통해 정화한 오염수 89만 t 중 80%에서 스트론튬, 요오드 등 방사성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스트론튬90은 반감기(방사선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가 29년으로 길고, 뼈에 축적되는 성격이 있다. 오염수 6만5000t은 기준치 100배를 넘었고, 일부는 기준치의 약 2만 배를 넘은 것도 있었다.

도쿄전력은 해양 방류를 언급할 때 삼중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핵종은 거의 제거됐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허용 기준치 이상의 독성을 가진 스트론튬 등 물질이 포함돼 충격적이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도쿄전력이 문제를 숨긴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비판했다.

오야마 가쓰요시(大山勝義) 도쿄전력 리스크커뮤니케이터는 2일 “초창기 ALPS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없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해양 방류를 결정할 때 위험성이 큰 핵종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해양으로 방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후쿠시마 원전수 해상 방출 왜 위험한가, 대책은’ 토론회에 참석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도쿄전력은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오염수는 한 번 더 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로서는 안전성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80만 t의 삼중수소를 지하에 주입해 저장하면 6200억 엔(약 6조8800억 원), 수소로 전환시켜 배출하면 1000억 엔이 들지만, 해양에 방류하면 34억 엔으로 월등히 싸다”며 일본이 비용 때문에 해양 방류를 선호하는 게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 “오염수 100년 동안 탱크 저장해야”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소위원회는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해양 방류, 수증기 방류, 지하 매설 등 6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현재 상태대로 저장하는 것이다.

마쓰쿠보 하지메(松久保肇) 일본 원자력자료연구실 사무국장은 “도쿄전력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법은 현재 상태로 100년간 오염수를 저장하는 것”이라며 “100년간 저장하면 방사선이 반감해 위험성이 크게 줄어든다. 그때는 특별히 처리하지 않고 방출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토 시노부(後藤忍) 후쿠시마대 교수도 “(오염수를) 가능한 한 장기보관하자는 안(案)에 찬성한다. 대형 석유 비축탱크는 100년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면, 방사성물질이 북태평양에서 동중국해를 거쳐 동해에 유입된다는 사실은 일본의 연구로도 이미 밝혀졌다. 가나자와대와 후쿠시마대, 히로사키대 연구팀이 2017년 11월 국제학술지 ‘해양과학’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태로 발생한 세슘-137의 동해 내 농도는 사고 직후인 2012, 2013년 증가하기 시작해 2015, 2016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세슘-137의 농도는 사고 전보다 2.27배 높은 수준이었다. 후쿠시마 해안에서 표층수를 타고 동중국해를 거쳐 동해로 유입되는 데에는 1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오염수 해양 방류를 국내 문제로만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후쿠시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김민지 채널A 기자 / 세종=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후쿠시마 오염수#원전사고#후쿠시마 제1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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