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자율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의 일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이 지난달 23일 먼저 이슈를 던지고, 30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일괄 폐지 검토’ 발언을 하면서 논의를 공식화했다. 유 장관은 “의견을 수렴해 올해 안에 결정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일괄 폐지 방안으로는 자사고와 특목고 설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삭제하는 것이다. 외국어고와 국제고 등 특목고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0조에, 자사고는 91조의 3에 설립 근거가 있다. 이 조항들은 대통령령이어서 국회 의결을 거칠 필요가 없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 여권은 이 조항들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삭제해 자사고와 특목고를 한꺼번에 폐지하자는 복안인 것 같다. 일괄 폐지가 된다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기 위해 재지정 평가를 거칠 필요도 없다.
이런 움직임에 자사고들은 반발하고 있다.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으면서 자사고 10곳이 교육부로부터 지정 취소 결정을 받고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어렵게 자사고 지위를 유지했는데, ‘일괄 폐지’라는 대형 악재에 다시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자사고 일괄 폐지는 올해 재지정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까지 모두 없애겠다는 게 핵심 아니겠느냐”며 “자사고 교장들이 모이면 불만과 애로를 많이 토로한다”고 전했다. 자사고 교장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자사고 압박이 지속되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위축되고 그에 따른 지원자 감소 우려도 나온다.
자사고, 특목고 일괄 폐지는 정부가 선택한 일종의 ‘우회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 재지정 평가를 통한 자사고, 특목고 폐지는 번거로운 절차인데, 일괄 폐지는 ‘간편하면서도 효과는 만점’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편리함 속에 오류의 함정이 있을 수 있다. 고교 체계와 같은 교육제도는 그 어떤 분야보다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존속해 온 학교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변덕스럽다는 우리 대학 입시도 학생들이 받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대입을 치르기 4년 전에는 예고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한다면 전국의 중고교생들이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일괄 폐지 구상에는 법적인 논란도 있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자사고 일괄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근거 조항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의 3만 없애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91조의 3은 “교육감은 ‘법 제61조’에 따라 자율형사립고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의 위임을 받았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의 3을 삭제한다고 해도 자사고 지정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61조는 그대로 있는 만큼 이미 지정된 자사고를 없애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자사고로 지정돼 있는 학교들은 지정의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61조의 규정을 받기 때문에 하위 시행령을 삭제했다고 해서 법적인 존립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공부할 권리가 있다. 능력에 따라 학교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천부인권적 권리는 헌법 22조에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자사고, 특목고 일괄 폐지는 미래 세대의 공부할 권리를 제약하고 그들의 꿈을 꺾는 일이 될 수 있다. 교육부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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