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1일 중국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이 치러졌다. 베이징(北京), 청두(成都) 등지에서 현지인 3만2671명이 응시했다. 그런데 시험 후 베이징 응시자 중 38명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갖고 왔다가 적발됐다. 돈을 받고 온 ‘대리응시자’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대리응시자 68명이 확인됐다.
8일 교육부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에게 제출한 ‘한국어능력시험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토픽에서 부정행위 1250건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만 401건으로 전년도(177건)의 2배가 넘었다.
토픽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재외동포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다.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시험을 관리한다. 1997년부터 전 세계 80개국에서 152개 국적의 사람이 응시했다. 최근 5년간 누적 응시자는 151만 명을 넘는다. 주로 국내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응시한다. 통상 대학 학부과정 입학에 3급, 대학원 졸업에 6급이 요구된다. 최근 토픽 점수가 높은 외국인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면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덩달아 부정행위도 치밀해지고 있다. 대리응시를 계획한 중국인 알선자는 시험 전 대리응시자 명의로 여러 개의 수험번호를 확보하고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위챗에 비밀 공고를 띄웠다. 대리응시 신청이 들어오면 응시자 정보 수정이 가능한 마감 일주일 전 신청자 이름을 바꿔 넣은 것이다.
문제는 시험을 관리하면서 원칙을 지켰다면 사전에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리응시자는 신청자의 신분증을 들고 시험을 본다. 감독관이 시험 전후에 응시자 본인과 신분증을 대조하기 때문에 현장 적발이 충분히 가능하다.
2017년 베트남에서 발생한 부정행위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현지인 18명은 이어폰 형태의 무선 음성 수신 장치를 귓속에 꽂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이들은 수신장치를 통해 전해진 정답을 받아 적어 모두 토픽 2급에 합격했다. 해당 시험에 함께 응시한 한국어 실력자가 문제를 먼저 풀고 나와서 정답을 알려준 것이다. 당시 감독관이 규정대로 응시자들의 조기 퇴실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부정행위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부정행위를 막으려면 현지 감독관이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원은 개인정보 변경 가능 기간을 7일에서 3일로 줄였지만 여전히 대리응시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일부 시험장에는 특수 장비를 찾아내는 금속탐지기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감독관이 원칙대로 행동한다면 이런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부정행위가 계속된다면 토픽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질 수 있다. 교육당국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