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기자는 북한 대표단이 입국한 3일부터 이들이 출국한 6일 오전까지 공항은 물론이고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북한대사관과 회담장, 미국 대표단이 머문 호텔을 오가며 이른바 ‘24시간 뻗치기’를 했다. 하지만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양국 간 간극만 확인한 채 협상이 끝나자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에서 스웨덴 정부가 보여준 행보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중재자를 자임하고 나선 스웨덴 정부는 이번 협상이 결실을 맺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분위기였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북한대사관 담벼락 밑과 호텔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각국 취재진은 스웨덴 정부 관계자만 보이면 긴장했다. 스웨덴 정부 관계자가 항상 미리 도착해 현장 안전을 살폈고, 이후 10분 내로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를 외쳤다. 보안도 철저했다. 협상장에서 300m 떨어진 진입로부터 통제됐다. 뒤쪽 산길을 통해 협상장에 접근하려 했지만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제지당했다. 일대 바닷가에는 순찰선까지 띄울 정도였다.
이런 스웨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양국 대표단은 꽤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북한 대표단은 스웨덴 정부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미소로 신뢰를 보냈다. 비건 대표는 협상 시작 전 스웨덴 외교부 청사부터 방문했다. 회담 후 미 국무부도 “스웨덴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스웨덴은 내전 중인 예멘 정부와 반군 간 중재자로도 나서 최근 휴전 합의를 이끌어냈다.
왜 스웨덴은 자국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북핵 협상을 중재하고 나섰을까.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 4개국 중 하나가 스웨덴이라는 인연도 작용했을 것 같다. 1975년 서방 국가 중 처음으로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은 스웨덴을 통해 자국인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 지원을 받기도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스웨덴은 자국에 가장 유리한 ‘외교 로드맵’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크다. 스웨덴은 1980년 창설된 ‘군축 안전보장 독립위원회’, 속칭 팔메위원회의 기원이 된 곳이다.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의 이름을 딴 이 위원회는 안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당시의 안보 개념은 상대국이 ‘미사일 10개를 가지면 나도 10개’로 맞춰야 자국 안보가 유지된다는 ‘제로섬’에 가까웠다. 팔메위원회는 이런 군비 강화가 오히려 안보를 위협한다고 봤다. 이에 상호 조율해 무기를 줄여야 진정한 안보를 이룰 수 있다는 ‘협력 안보’를 내세웠다. 유럽 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비해 군사력에서 열세인 스웨덴으로서는 이런 노력이 자국 이익 극대화에 도움이 된 것. 그러니 ‘평화의 중재자’란 외교 전략이 필연적이었던 셈이다.
스웨덴 외교가 무조건 ‘좋다’고 칭송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국가의 외교는 냉정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후 장기 로드맵 아래 세밀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다. 북핵 협상에서 사실상 배제된 우리의 위치도 그래서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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