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30년 한국인은 세계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길다. 이런 내용으로 여러 차례 대중 강연을 했지만 그때마다 중장년층 청중은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아마도 노후에 닥칠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악화가 염려돼서일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생활습관이 건전해야 한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금연과 절주가 절실하다. 생활습관은 개인 의지로 교정할 수 있지만 의지만으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일수록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생활습관에 구체적으로 개입한다. 호주에서는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가격 정책을 써 담뱃값이 1만 원이 넘는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개인의 생활습관에 개입할 때 가장 확실한 수단은 정책 집행을 위한 재원 확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올해 예산 72조 원 중에서 2조 원 남짓만 보건의료 분야 투자가 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는 2020년도 국가 예산을 500조 원 넘게 편성한다고 예고했다. 재정 규모가 늘어날수록 건강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일반 회계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투자해야 하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은 정부 재정과는 별도로 사회보험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 지난해 기준 건강보험 재정은 65조 원 규모다. 주로 국민이 아플 때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보장성을 강화하는 일에 쓰인다.
필자는 국민건강보험 재원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현재 국가건강검진, 건강증진사업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건강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국민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면 건강보험료나 진료비 본인부담금 등을 경감해 주는 건강인센티브 제공도 고려해볼 만하다. 고령화하는 국민이 질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해 노동력 손실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또 합계출산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저출산 사회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의료서비스 이용을 부르고 건강보험 재정 운용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설상가상 건강보험료를 지불할 젊은 근로 계층은 줄어들고 있다. 현재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 의료비 증가율은 연평균 7.5%로 역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병의원 외래 방문 횟수와 입원일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마디로 의료 이용량이 엄청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GDP 대비 국민 의료비는 낮은 편이지만 곧 평균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 비용 부담은 온전히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이같이 미래에 곧 닥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노인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건강한 노인이 늘어나면 노인 의료비도 대폭 줄일 수 있으며 노동 가능한 인적 자본이 확보돼 저출산 시대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더 적극적으로 국민의 생활습관 개선을 비롯한 예방적 투자에 나서야 할 때다.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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