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에게 곧잘 던지는 질문이 있다.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얼핏 ‘소개팅’ 멘트 같지만 상대를 이해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그러다 보면 의외로 취미가 같아 급속도로 친해지기도,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령 한없이 수줍어 보이는 동료가 주짓수를 한다든지, 항상 무리 속에 섞여 음주가무를 즐기던 친구가 알고 보니 (나처럼) ‘주기적으로 홀로 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 틈만 나면 혼자 카페로, 여행지로 도망을 간다든지. 겉으로는 알 수 없는 타인의 이면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취미는 상당히 많은, 구체적인 정보를 함축적으로 제공한다.
그에 못지않게 즐겨 묻는 것이 바로 어릴 적 장래희망이다. 취미가 타인과의 관계를 여는 지름길이라면 장래희망은 잠시나마 마주 앉은 이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앨범이다. “어릴 때 장래희망이 뭐였어?” 물으면 대개는 당황한다. “어릴 때?” 머뭇거리며 내놓는 답변들은 뜻밖인 경우가 많다. “나 대… 대통령이었던 것 같아.” 대통령이 되지 못한 마케터 친구는 서울 강남역 언저리에서 사교육 시장의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나의 장래희망은 시시각각 변했다. 사물함에 이름과 함께 장래희망을 써 붙이던 시절, 내 꿈은 화가였다. 생일선물로 스케치북을 박스째로 받던 때였다. 그려 봤자 예쁜 옷을 입은 공주나 세일러문 정도였지만 주변에서 그림을 부탁하곤 했으니(심지어는 사가기도 했다!) 자질은 충분한 줄 알았다. 머리가 크면서 화가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은 선생님이었다. 공부를 제법 했고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오면 알려주는 것도 퍽 좋아했다. 그 꿈은 꽤 긴 시간 이어져 ‘좋은 선생님’으로 구체화됐다. 그랬던 어느 날 한 악명 높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그 꿈은 산산조각 났다. “나도 옛날에는 니들 혼내고 뒤돌아 울고 그랬어!”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고 그러기도 창피하지만 그 뒤로도 숱한 꿈들이 피고 졌다. 대부분은 마음이 떠났고 일부는 마음을 접어야 했다. 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온 게 지금의 나다. 만족스러운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내 꿈의 역사를 살펴보면 종종 괴리감이 들 때도 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었고 누군가는 화가였다. 누군가는 우주비행사였고 과학자, 가수, 심지어 공주였다. 그 많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세상을 아는 만큼 꿈의 폭은 좁아졌다. 장래희망은 선택할 수 있거나 선택해 마땅한 ‘직업’의 궤도 안을 맴돌았다. 재고 따지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불가능의 언어를 알게 되면서, 꿈꿀 수 있는 것만 꾸게 됐다.
그러나 박막례 할머니는 70대에 세계적인 유튜버가 됐다. 시바타 도요는 86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에 첫 시집을 냈다. 결말을 논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을까. 혹시 아는가! 앞서 말한 그 친구가 교육계를 혁신해 먼 훗날 대통령이 될지. 덧붙여 사실, 조금은 자위적일지라도,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장래희망이 여전히 직업과 동의어일지언정 직업과 꿈은 동의어가 아니니까. 직업으로 정의되지 않는 꿈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예전엔 되고 싶은 게 많았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무언가가 되든 되지 않든, 오늘 나의 꿈은 지금 이곳에 분명히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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