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서점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18일부터 2024년 10월까지 5년 동안 대형 서점들은 연간 1곳만 출점할 수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이전에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있다. 대기업의 사업 확대로 어려워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지난 7년간 100여 개 품목이 지정된 바 있다. 대표 품목은 베이커리로 동네 빵집을 살리자는 취지로 2013년 지정됐다. 이에 따라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의 뚜레쥬르는 매년 전년도 말 기준으로 연간 2% 이상 점포 수를 늘릴 수 없다.
생계형 및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영세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해 동반성장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동네 빵집과 동네 서점을 살리기보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계 기업과 일부 중견·중소기업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서점업이 지정되자 당장 시장에서는 “온라인 서점은 그냥 두고 대형 서점만 규제한다고 동네 서점이 살아나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대기업 베이커리 체인의 출점 제한으로 비어 있는 골목상권은 동네 빵집이 아닌 적합업종 규제를 받지 않는 브리오슈도레, 곤트란쉐리에 등의 외국계 베이커리 체인들이 채우고 있다.
최근 두부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군인공제회가 자회사를 앞세워 중소기업 적합업종인 수입콩 두부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군인공제회의 자산 규모는 10조 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군인공제회는 기업이 아닌 비영리 법인이고, 이 법인의 자회사는 현행법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두부시장에 진출해도 문제가 없다. 두부 생산·가공업체들로 구성된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는 “자산 규모가 10조 원이 넘는데 대기업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군인공제회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우리는 도저히 납품할 수 없는 가격으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동반성장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규제해서 기존 파이를 나누겠다는 발상보다 상생과 지원으로 해당 산업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기업이 중소업체에 일감을 주고, 중소업체의 인프라를 확충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파이를 키워나가는 게 영세 중소업체 및 소상공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대형 유통업체와 전통시장 간의 갈등을 이마트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풀어나가고 있다. 상생스토어는 전통시장에서는 팔지 않는 가공식품과 생활용품 위주로 판매상품이 구성돼 있다. 골목상권을 침해하지는 않으면서 전통시장으로 고객을 불러들이는 역할도 하고 있어 바람직한 상생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계속 늘려나갈 방침이다. 품목을 늘리기에 앞서 규제가 취지대로 효과를 내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규제 외에 상생을 통해 산업을 함께 키워나갈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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