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존재를 지워야 성공할 것 같은 예술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그림을 생각해 보자. 떡볶이를 너무 진짜처럼 그린 나머지, 누군가 실제로 그 그림을 진짜 떡볶이로 착각하고 먹으려 들 때 화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변기를 너무 진짜처럼 그린 나머지, 누군가 실제로 그 그림을 진짜 변기로 착각하고 거기다 똥을 싸려 들 때 화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현실의 대상을 변형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신, 현실의 대상을 ‘그대로’ 모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화가는 이 작품들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의 존재가 작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변기와 떡볶이가 진짜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을 관람객이 깨닫는 순간, 창작자는 환상을 현실처럼 창조한 신(神)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Woman of the Hofer Family)이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대상을 놀랍도록 정밀하게 묘사한다. 파리가 그림을 현실로 착각해서 내려앉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현실성’이 도드라진 이 그림에서 화가의 존재는 철저히 지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가의 서명이 없기에 1470년경 슈바벤 지역 화가가 이 그림을 그렸을 거라는 정도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의 머리 장식에 내려앉은 파리는, 현실과 혼동 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환상 창조 능력을 가진 창작자가 존재했음을 증거한다. 파리는 곧 창작자다.
창작자의 존재를 지워야 성공할 것 같은 예술 중에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영화 이론가 빌 니컬스에 따르면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의 존재는 파리에 비유된다. 현실 개입을 자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마치 벽에 조용히 달라붙어 있는 작은 카메라와 같다. 그래서 그를 ‘벽 위의 파리’(the fly-on-the-wall)라고 부른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감독은 현실 속에서 부산하게 허우적거리는 카메라와 같다. 그래서 그를 ‘수프 속의 파리’(the fly-in-the-soup)라고 부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찐 T 민하 감독이 세네갈을 다룬 다큐멘터리 ‘재집합’(Reassemblage)이 상영됐다. 베트남전쟁 와중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으로 이주해 대학에서 탈식민주의를 가르치는 그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세네갈을 바라볼 수 있을까. 서구식 계몽이라는 명분으로 아프리카를 재단해 버리지도 않고, 동시에 아프리카를 부패한 서구 문명의 대안으로 미화하지도 않으면서, 과연 아프리카를 제대로 응시할 수 있을까.
감독은 영화 도입부에서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들 가까이에서 말하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그 말에 걸맞게 영화는 시종일관 세네갈의 남녀들이 노동하는 모습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어떤 때는 아무런 음향도 없이 이미지만, 어떤 때는 이미지 없이 음향만, 어떤 때는 음향과 이미지를 함께 사용하여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 낼 뿐, 세네갈 사람들이 베를 짜고, 아이를 씻기고, 소를 몰고, 가끔 웃고, 밭을 가는 모습을 무심하게 영화에 담는다. 그리고 거기에 파리가 앉는다. 세네갈의 여인들이 무심하게 드러낸 젖가슴 위로 파리가 내려앉는 모습을 카메라는 한동안 응시한다.
파리가 내려앉을 때, 죽어가는 것들은 무력하게 자신을 파리에 내맡기는 반면, 애써 살아 있고자 하는 것들은 휘휘 허공을 저어 파리를 내쫓는다. 그러나 세네갈의 어떤 여인은 자신의 가슴 위로 내려앉은 파리를 개의치 않은 채 자신의 노동에만 묵묵히 열중한다. 그녀 가슴 위에 앉은 파리는 세네갈을 찍기 위해 아프리카에 상륙한 찐 T 민하라는 창작자의 자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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