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논리’ 외면한 남북 체육교류… 정치따라 냉온탕 반복[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5일 03시 00분


남북 체육교류의 갈 길
1978년 亞경기 축구 공동우승 때 北측, 시상대서 한국 선수 밀어내
1990년 평양서 열린 통일축구 땐 우리 선수 목말 태우고 열렬 환영
남북 이벤트로 단일팀 등 활용에 선수들 ‘희생양’ 의식… 갈등 커져
국제대회서 남북 선수 화합행사… 서로 강한 종목, 상호 전지훈련 등
스포츠 논리 따른 장기 계획 필요

2018평창 남북 공동입장, 2019평양 무관중 경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반도기를 든 남북 선수들이 공동 입장하고 있다(왼쪽 사진). 성화 최종 점화 때도 남북 선수들이 함께 했고 여자 아이스하키는 단일팀을 꾸렸다. 15일 한국과 북한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이 열린 김일성경기장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 사상 초유의 ‘자체 무관중’ 경기를 치른 북한은 방송 중계도 거부했다. 동아일보DB
2018평창 남북 공동입장, 2019평양 무관중 경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반도기를 든 남북 선수들이 공동 입장하고 있다(왼쪽 사진). 성화 최종 점화 때도 남북 선수들이 함께 했고 여자 아이스하키는 단일팀을 꾸렸다. 15일 한국과 북한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이 열린 김일성경기장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 사상 초유의 ‘자체 무관중’ 경기를 치른 북한은 방송 중계도 거부했다. 동아일보DB
이원홍 전문기자
이원홍 전문기자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평양 경기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뿐만 아니라 남북 스포츠 교류는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많았다. 무엇이 이런 논란을 불러왔을까.

스포츠의 속성은 대결과 경쟁이지만 그 목표는 비정치적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 등은 모두 정치는 물론이고 각종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화합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스포츠는 항상 가장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선수 및 팀 간 경쟁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비정치적인 이미지를 지닌 스포츠 행사들은 정치적 긴장관계에 있을 때면 자연스러운 대화 기회를 만드는 통로로 활용돼 왔다. 남북 스포츠 교류에는 이러한 점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 사생결단의 장면들

“카메라 부숴 버린다.”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 축구대회 한국과 북한의 결승전. 한국의 주장이었던 김호곤 수원FC 단장은 경기장에 입장할 때 한국 취재진을 향해 북한 선수들이 했던 험악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남과 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던 축구가 광복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대결을 하게 된 때였다. 폐회식 직전에 열리는 경기였다. 중앙수비수였던 박성화 동래고 감독은 “긴장감 때문에 2, 3일간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박 감독은 “당시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이 선수들을 모아놓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는 폐회식 경기에서 우리 축구대표팀이 지면 다른 종목에서 다 이겨도 이 대회 전체에서 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후반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침을 맞고 피를 뽑아가며 뛰었다. 결국 경기는 연장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승부차기가 없던 때여서 남북은 공동 우승을 했다. 하지만 시상대에 먼저 오른 북한 주장 김종민은 한국 주장 김호곤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김호곤이 간신히 시상대에 섰을 때는 뒤에서 북한 골키퍼 김광일이 김호곤을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다. 결국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김호곤의 제안으로 두 주장이 웃으며 포즈를 취했지만 그 뒤에는 치열한 남북의 경쟁심이 숨어 있었다.

‘남북 간 정치 전략으로서의 스포츠(Sport as a political strategy in South-North Korean Relations)’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 정치 상황과 스포츠 외교 정책을 분석했던 장익영 한국체육대 교수(스포츠사회학)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를 양국이 국제무대에서 스포츠를 통한 극심한 체제 우위 경쟁을 벌이던 때라고 분석했다. 1955년부터 1971년까지 남북의 실제 무력 충돌만 62차례에 달했던 때였다.

이때도 남북 스포츠 교류 제안이 있기는 했다. 북한은 1960년 로마 올림픽을 앞둔 1957년 먼저 남북 단일팀을 제안했다.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전신이었던 조선올림픽위원회가 194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한 데 비해 북한은 1957년까지 IOC에 가입하지 못했다. IOC 가입 이전 국제무대에서의 고립을 탈피하고 올림픽 무대에서 체제를 인정받으려 했던 북한은 동유럽권의 압력에 힘입어 이해 IOC에 가입하자 단일팀 제안을 없던 일로 했다.

한국이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스포츠를 통한 체제 경쟁은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서울 올림픽 개최가 임박하자 북한은 다시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올림픽 절반을 북한에서 열자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로 무산됐다.

○ 정치 상황에 따라 반복된 화합과 긴장

상황은 1990년대 들어 급변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로 한국은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을 끌어안으려는 유화 메시지가 필요한 때였다. 북한도 동유럽권의 몰락을 앞두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남북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 도중 전격적으로 그해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 통일축구를 연다고 발표했다.

정치 상황이 바뀌자 스포츠 교류 분위기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평양대회에 참가했던 윤덕여 전 여자대표팀 감독은 “비행기 트랩에서부터 공항청사까지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를 목말 태우고 깃발을 흔들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한국의 현정화와 북한의 이분희가 출전한 단일팀은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 정책 속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 북한의 대규모 선수단과 미녀응원단 파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논의 중이던 이해 베이징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은 무산됐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사건에 이어 햇볕정책 무용론 속에 남북 스포츠 교류도 얼어붙었다. 남북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야 다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내보냈다.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도발 속에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계기가 필요한 때였다.

○ 지나친 국가 개입과 정치도구화에 대한 반발

스포츠가 막혀 있던 남북 대화 통로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2032년 남북 공동올림픽 개최를 추진 중인 정부 관계자는 “긴장을 완화하고 단결시키는 것이 스포츠의 순기능”이라고 했다. 스포츠인들도 이 점에서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당시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이 합류하는 만큼 한국 선수가 엔트리에서 탈락해야 하는 상황에 반발했다. 현재 2020년 도쿄 올림픽 남북 단일팀 추진 과정에서도 예민한 문제다. 탁구 단일팀 논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남녀 각 3명뿐인 탁구대표팀 엔트리에 북한 선수 1, 2명이 들어오면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남북은 엘리트 스포츠 경쟁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운동기계’로 길러진 선수들을 ‘국위 선양’이란 명분 아래 희생시켰다는 인식도 있다. 아직도 많은 선수가 30대 전에 은퇴해 인생을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 출전마저 타의에 의해 무산되는 걸 선수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또 과거 남북 스포츠 교류는 대부분 정치적 결단이 먼저 있고 난 후 그 수단으로 사용됐다. “스포츠 교류 결정에서 스포츠인들의 의견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색채를 덜고 스포츠 자체의 논리에 따라 교류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는 평소 남북이 서로 강점을 지닌 종목 중심으로 상호 전지훈련을 하거나, 국제대회에서 남북 선수들의 화합행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일관되게 추진해야 정권에 따라 남북 스포츠 교류가 일회성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인식을 지울 수 있다. 그러나 남북 관계의 특성상 정부의 허가 없이는 남북 스포츠교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2023년 여자 축구 월드컵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남북 공동 개최를 한국 쪽에 제안해 놓은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공동 개최가 아무래도 국제적인 관심과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자 월드컵 개최 자체는 침체된 여자 축구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인프라를 확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축구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최근 남자 월드컵 예선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국제적 명분과 정치적 관심만 앞세워 남북 공동 개최를 추진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축구계에서도 “이런 분위기라면 굳이 남북 공동 개최를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최근 남자 월드컵 예선과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논란은 모두 페어플레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한 데서 기인했다. 과도한 정치적 메시지, 선발 과정의 불공정함 등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는 스포츠가 정치적 부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장익영 교수는 최근 남북 스포츠 교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의 정치적 도구화에 대한 저항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남북 체육교류#2022 카타르 월드컵#남북 축구#남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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