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됐지만 입법이 되지 않아 진행에 차질을 빚을 사업이 총 13개, 14조3234억 원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확인해보니, 관련 법 통과를 전제로 예산을 짜놓았지만 법안 심사를 못하는 바람에 조정이 불가피해진 사업이 이 정도다. 국회 파행으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민생·경제 법안은 이보다 훨씬 많다.
법무부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결정에 따라 내년도 시설 및 운영 예산으로 259억 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들이 아직도 국회 국방위원회에 계류 중이어서 제때 제도가 시행될지 알 수 없다. 보건복지부도 소득 하위 20%의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내년부터 하위 40%로 확대하기 위해 13조 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지만 관련 법은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여야 의원들이 정쟁을 일삼느라 의견 차이가 별로 없는 법안 처리까지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AI) 콘퍼런스를 찾아가 “AI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적극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AI 자율주행차 스마트의료 금융혁신 등에 필수적인 규제개혁 법안인 ‘데이터 3법’은 국회에 묶여 있다. 이 밖에도 주 52시간제 보완과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벤처투자촉진법, 소재 부품 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소방관 국가직 전환법 등 시급한 경제와 민생 법안들이 길게는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통합의 리더십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 크다. 걸핏하면 국회를 놔두고 장외투쟁을 하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 역시 민생과 경제를 말할 자격이 없다. 법안 제출도, 공론화도 없이 일단 예산부터 끼워 넣은 부처들의 책임도 크다. 20대 국회가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마지막 남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라도 고단한 민생을 보듬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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