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지화(紙花)로 치장한 제단이 차려지고, 오색 뱃기가 펄럭였다. 생선 비린내로 가득한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부산공동어시장에 모여 있는 1000여 명이 풍어제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어제는 만선(滿船)과 해상 안전을 기원하는 제의로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람들 표정은 어두웠다.
수첩을 들고 있는 필자를 기자라고 생각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곁으로 다가왔다. 부산공동어시장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생선 분류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지만 용왕제를 지내는 건 처음 봤다고 한다.
“지난해에 비해 위판 물량이 절반가량 줄었어요. 이런 불황은 처음 봐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죄다 공동어시장에 매여서 먹고사는데 일거리가 없으니 걱정입니다. 답답하니 용왕님한테 하소연이라도 해야죠.”
부산공동어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이맘때 13만 t 이상을 위판했으나, 올해는 겨우 7만 t을 넘은 수준이라고 한다. 일감이 줄어듦에 따라 선주, 선원뿐만 아니라 공판장 중도매인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선에서 공판장으로 하역된 생선을 분류, 운반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처리하는 상자 개수에 따라 일당을 받기에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에 항운노동조합 측에서 제안해 지난달 15일에 풍어제를 열게 됐다.
부산공동어시장의 위판 물량이 줄어든 첫째 요인은 고등어 어획량 감소다. 우리나라 고등어 어획량의 90% 이상이 부산공동어시장을 통해서 전국으로 유통된다. 그런데 올해 들어 잡히는 고등어 양이 급감해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해양수산인식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으로 고등어가 선정됐다. 201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3년째 1위다. 연간 국내 유통량은 14만4000t으로, 국민 1인당 7∼8마리를 먹는 셈이다. ‘바다의 보리’라 불리는 고등어는 명실상부 ‘국민 생선’이다. 한때 어획량이 너무 많아 골칫거리였으나, 지금은 수입 고등어에 의존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10년 14%에서 2017년 40%까지 치솟았다.
연근해에서 어획되는 중대형 고등어가 줄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은 고등어만 잡히자 대형선망업계 24개 선단, 140여 척은 올해 3개월 동안 조업을 중단했다. 조업을 계속하면 어획량은 늘지만 고등어 씨알이 줄어들고, 자원 회복을 위해 조업을 멈추면, 그 빈자리를 수입 고등어가 차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일본과 배타적경제수역(EEZ) 협상이 진척되지 않음에 따라 고등어를 잡을 수 있는 활로 모색이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사람들은 1963년 부산공동어시장 개장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한다. 현수막에 적힌 ‘한마음 풍어제’라는 문구처럼 하나로 모인 마음이 용왕님에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등어가 몰려와 다시 예전의 활기를 찾기를 바란다. 공판장이 고등어 비린내와 노동자들의 투박한 목소리로 떠들썩한 날, 부산 고갈비 골목에서 노릇노릇한 고등어갈비를 안주 삼아 소주잔 기울이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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