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밀린 법안 1만6000건인데 하루 185건 졸속 발의한 무개념 의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일 00시 00분


국회가 그제 본회의를 열어 내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 비쟁점 법안 164건을 통과시켰다.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린 것은 90일 만이다. 본회의에서는 2018 회계연도 결산안도 가결됐다. 결산 심의·의견을 정기국회 개회 이전에 끝내도록 한 국회법을 어기고 8년째 늑장 처리를 한 것이다.

정기국회 종료를 한 달가량 앞두고 뒤늦게 무더기 법안 통과가 이뤄진 것은 그동안 정치권이 극한 대립을 하며 정쟁에만 매몰됐던 탓이 크다. 그나마도 시급한 경제·민생 관련 법안 가운데는 여전히 본회의 상정조차 안 된 법안이 수두룩하다. 경제계가 애타게 바라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은 여야의 입장이 맞서 대화조차 제대로 안 이뤄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데이터 3법’ 개정도 상임위 법안 심사에서 발목이 잡혔다.

사정이 이런데도 의원들은 중요한 법안 처리는 외면한 채 자신의 이름을 담은 새로운 법안을 쏟아내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하루 동안에 발의된 법안은 총 185건이며 그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182건에 달한다. 여당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목을 매는 것은 다음 주부터 시작될 민주당의 선출직 공직자 평가에서 입법수행 실적 점수를 따기 위해서다. 내년 공천 심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고 ‘벼락치기’ 입법에 나선 것이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보기 민망한 수준의 졸속 법안이 수두룩하다. 기존 법률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법 개정안을 내는가 하면, 오탈자가 버젓이 남아있는 법안도 있다. 그나마도 건수를 채우느라 의원들끼리 돌아가며 공동 발의 도장을 찍는 품앗이를 한다. 이런 식으로 무성의하게 법안을 양산해내는 것은 입법권 남용이며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일이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만 됐을 뿐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밀린 법안이 무려 1만6000여 건에 달한다. 남은 정기국회 회기는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마지막 기회다. 그 출발은 밀린 법안 심사를 꼼꼼하게 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들고 정부가 제출한 513조 원 규모의 초슈퍼 예산안을 정밀하게 들여다봐 혈세 낭비를 막는 일이어야 한다.
#국회#입법#계류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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