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입시학원엔 1층 현관문 앞부터 2층 강의실까지 이어지는 계단과 복도에 학부모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먼저 도착한 학부모 400여 명이 입시 설명회 강의실을 가득 채우자 나머지 학부모 200여 명은 영상 중계로라도 설명회를 듣겠다며 예비 강의실로 향했다.
A학원은 이날 ‘교육정책 최고 전문가와 함께하는 예비 고1, 2 입시전략 설명회’라는 행사를 한 차례 취소했다가 강사를 교체해 다시 진행했다. 본래 연사로 나선다고 소개됐던 ‘최고 전문가’는 다름 아닌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당 B 의원이다. A학원이 지난달 30일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 정책 전문가인 ○○○ 국회의원을 모시고 현 정부의 입시정책을 알아보고, 그 대응 전략을 얘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홍보하자 신청자가 600명 넘게 몰린 것이다.
해당 글이 게재된 날 오전 교육위 여당 의원들과 교육부, 청와대 관계자는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비공개 협의를 벌였다. 불과 닷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 정시모집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그 비율은 밝히지 않아 입시생 학부모의 관심은 온통 당정청 협의의 향방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논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설명회에 나타난다고 하니 학부모가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A학원 측은 B 의원의 설명회 참석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달 1일 해당 글을 삭제하고 신청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초청 강연 취소를 통보했다. 하지만 이미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뒤였다. 설명회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국회의원이 입시 설명회 연사로 온다는 건 처음이라 소식을 듣자마자 신청했다”며 “강사가 바뀌었지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참석했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도 “국회의원을 부를 정도의 학원이면 입시제도에 대해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왔다”고 했다.
A학원 대표 C 씨는 “B 의원을 초청한 건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대치동에는 영업을 위해 거짓 정보를 뿌리는 학원들이 많은데, 교육 전문가 B 의원을 초청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C 씨는 B 의원과는 인연이 있어 강연료도 주지 않는 조건으로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B 의원은 “할 말이 없다”며 해명 요청을 거절했다.
B 의원이 정말로 강연료 없이 설명회 자리에 나오려 했는지는 핵심이 아니다. 전국 입시생 학부모의 시선이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교육 정책을 기습 발표하는 당정의 입에 쏠려있는 상황에, 교육 정책을 좌우할 수 있는 교육위 여당 의원이 특정 입시학원의 설명회 참석 요청을 단박에 거절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최근 잇달아 내놓고 있는 교육 정책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입 특혜 의혹에 따른 대책 성격이 짙다. 그런데 입시 제도를 고치겠다며 만든 정책의 열매가 일부 정보력 있는 입시생과 학부모에게만 돌아간다면 다른 학부모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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