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기를 이해하는 지표로 ‘리커창(李克强) 지수’를 만들어 쓴다. 전력 소비량, 철도 물동량, 은행 신규대출 잔액을 재구성한 것이다. 리커창 지수는 리커창 중국 총리가 2007년 랴오닝(遼寧)성 당서기 시절 주중 미국대사에게 한 말에서 유래한다. 그는 자국 성장률 통계가 인위적으로 조작돼 믿을 수 없다며 대안지표로 이들 3개 통계를 참고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리커창 지수가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는 연말이 되면 산하 전력회사에 민간 전력수요가 전년 대비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통계를 ‘마사지’할 것을 요구한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지방 관료들은 성장률 압박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통계에 손을 댄다. 세계 최대 슈퍼컴퓨터 보유국인 중국에서 매년 31개 지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더하면 국가 전체 GDP 총액을 초과하는 촌극이 되풀이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에서 통계 조작이 공공연히 벌어지지만 시장의 징계는 거의 없다. 글로벌 자본은 기대수익과 기회비용의 균형을 추구한다. 중국은 아직 기대수익이 높다. 이런 수준의 통계를 내놓아도 여전히 자본순유입국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중국 정도의 통계 규율을 갖고 있다면 결과는 끔찍했을 것이다.
지난달 말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한 통계청은 두 가지 잘못을 했다. 첫째, 통계 생산과 해석을 분리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나오자 강신욱 청장이 직접 나서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반환점(11월 9일)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걸었던 일자리정부에 흠집이 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을까. 강 청장은 보건사회연구원 재직 시절인 지난해 “최저임금 긍정 효과가 90%”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전달한 인물이다. 그는 청장 취임사에서 “특정한 해석을 염두에 둔 통계 생산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지만 당시 브리핑은 ‘의도한 대로 해석이 안 되는 통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읽혔다. 결과적으로 통계청장이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둘째, 그나마 해석마저 엉망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비정규직이 급증한 건 이번 조사에 앞서 두 달 전 실시한 조사에서 비정규직 여부를 묻는 질문을 추가한 적이 있었는데, 해당 질문이 없는 조사에서도 그 잔상이 남아 본인을 비정규직으로 인식한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 인원이 최대 5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 이번 통계를 과거 자료와 비교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이는 통계 자료로서 의미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통계청이 생산한 자료를 청장이 부인하는 격이었다. 일자리 참사가 통계 참사가 돼 버렸다.
현 정부 들어 성장률 통계, 일자리 통계가 나올 때마다 글로벌 경기 탓, 과거 정권 탓, 야당 탓을 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이젠 통계 생산 과정과 결과에까지 구구절절한 설명과 사연이 붙고 있다.
한 전직 관료가 해준 말이다. 외환위기 때 정부는 “펀더멘털은 견고하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뒤 실사단이 방한했을 때도 그렇게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넘버 토크스(Number talks)!”, ‘숫자가 모든 걸 말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은 숫자를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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