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재능이 만나 탄생한 ‘천재 리더’[DBR]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1일 03시 00분


인류가 막 21세기에 진입하던 시기, 실리콘밸리에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인류 최대의 혁신적 도전을 시작한 세 거장이 있었다. 바로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다.

2000년 베이조스는 일반인이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민간 우주 개발 업체인 블루오리진을 설립했다. 뒤이어 2002년 머스크는 화성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스페이스X를 세웠고, 브랜슨은 우주여행 사업을 위해 2004년 버진갤럭틱을 만들었다(브랜슨은 영국인이나 버진갤럭틱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에 있다).

이들의 대담한 도전에 대한 세간의 첫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들의 꿈은 더 이상 공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이 되고 있다. 블루오리진은 2015년 11월 로켓을 수직으로 발사해 약 100km 고도에 도달하도록 한 뒤 발사체와 캡슐을 모두 재사용할 수 있도록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뒤 스페이스X는 우주로 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선을 우주 궤도에 올린 다음 발사체를 회수해 로켓 재활용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또한 버진갤럭틱은 올해 2월 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승객을 태운 뒤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우주산업이 인류 최대의 ‘블루오션’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전에는 베이조스, 머스크, 브랜슨처럼 오직 극소수의 혁신가들만이 그러한 사실을 믿고 용감하게 도전했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걸까. 이는 세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심리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 바로 ‘이중 특수성(dual exceptionality·두 가지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특성이 특정 집단 혹은 한 개인에게 공존하는 것)’이다.

브랜슨에게는 난독증이 있었다. 학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난독증에 대한 이해가 낮았던 교사들은 게으르다며 야단치곤 했다. 머스크는 유년 시절 정서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았다. 특히 아버지로부터의 상처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또래 관계에서의 사회적 기술도 부족해 주변 사람들과 고립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베이조스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너드(nerd·지적으로 우수하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거나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일컫는 말)’ 중 한 명이다.

베이조스와 머스크, 브랜슨은 모두 우주산업을 위한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각 아마존, 테슬라, 버진그룹 등 다른 사업에서도 탁월한 실적을 만들고 있다. 그만큼 최고경영자(CEO)로서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제각각 서로 다른 형태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으로 ‘이중 특수성’ 집단에 속하는 이들인 셈이다.

21세기 초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우주산업에 뛰어들었던 실리콘밸리의 세 리더가 모두 이중 특수성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상처 경험과 탁월한 재능이 결합된 이중 특수성 집단의 특성과 우주라는 무한성의 세계가 갖는 독특한 특징이 서로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이중 특수성은 이들을 우주산업의 혁신자로 만들어 준 필요조건일 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들에게 추가적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특징이 있으니 바로 ‘전망(prospection)의 기술’이다. 전망이란, 객관적인 증거가 없거나 오히려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자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사실상 ‘믿음’의 문제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베이조스, 머스크, 브랜슨이 우주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그들 모두는 우주산업의 시대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열릴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모든 비즈니스 활동에 반드시 전망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론 전망의 기술보다는 합리성에 기초한 판단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존 데이터로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전망의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전망의 기술이 혁신 기업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이 원고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84호에 실린 글 ‘취약한 주변 환경이 되레 탐험 의지 키워, ‘전망의 기술’ 통해 우주산업 날개 달다’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lip@korea.ac.kr
#천재 리더#실리콘밸리#베이조스#아마존#일론 머스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