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M 포스터의 소설 ‘모리스’는 동성애가 금지되고 신분제가 엄존하던 20세기 초 영국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의 옛 동업자를 통해 취직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사회적 위신을 지켜 주고 욕정을 덜어 주고 아이를 낳아 줄 여자가 필요하다.’ 부모가 쌓아 올린 튼튼한 네트워크를 통해 취직하고, 뒤이어 부인을 얻고 사회의 ‘기둥’이 된 끝에, 손주를 볼 때까지 살다가 무덤으로 향하는 안전한 중상류층의 삶.
그런데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 너무 안전한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엄마가 허락한 힙합’ 따위에 열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제약이 욕망을 불타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사생아 에드먼드는 외친다. “사생아는 불타는 성욕을 만족시키다가 생겨난 존재이니, 지겹고 따분한 침대에서 의무 삼아 잉태된 정실 자식들보다는 낫지!” 모리스 역시 관습대로 사는 데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 친구 클라이브는 “왜 누구나 아이를 낳아야 하지”라고 중얼거리고, 모리스는 그와 동성애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동성과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귀족을 목격한 클라이브는 이성애자의 길로 전향한다.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사회에서 허용한 안온한 위치로 돌아간다. 남겨진 모리스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인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하인 스쿠더와 다시 동성애에 빠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한 모리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산과 사회적 지위를 거는 사랑의 모험에 나선다. ‘영혼을 잃고서 작고 갑갑한 상자들만을 소유한 수백만 겁쟁이들’의 사회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오랜만에 맛보는 정직의 맛이었다.” 환희에 찬 모리스를 보며, 클라이브는 사회적 지위는 유지했지만, 뭔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열패감에 휩싸인다.
모리스가 확신 속에 걸어간 길 위로 세월은 흐른다. 소설 모리스의 시대 배경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감옥으로 끌려가던 시절이었으나, 동성애를 처벌하지 말라는 울펜던 권고안이 1967년에 이르러 마침내 법제화된다. 그리고 1987년에는 소설 모리스가 대자본의 힘을 빌려 영화로까지 제작된다. 그 1987년만 해도 한국에서 동성애에 대한 금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고했기에, 영화 모리스는 ‘어둠의 경로’로만 유통된다. 비디오테이프를 돌려가며 영화를 본 당시 대학생들은 젊은 휴 그랜트의 눈부신 미모에 탄성을 질렀건만, 정작 영화가 정식 개봉한 2019년 휴 그랜트의 미모는 간 곳이 없다. 이제 21세기의 대학생들은 모리스의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가 각색한 또 하나의 동성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나오는 티모테 샬라메를 보며 경탄한다. “나, 티모테 너무 사랑해. 티모테한테 모성애 느끼나 봐. 그런데 나 티모테랑 동갑인데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긴 뭐가 어쩌면 좋아.
티모테를 사랑하는 여학생도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청첩장을 보내올지 모른다. 선생님, 저 결혼해요. 주례를 서 주실 수 없나요? 혹시 티모테와 결혼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상대는 한국 남자. 사회자의 소개에 따르면 이 사회의 기둥이 될 인재. 결혼식이 시작된다. 신부 입장! 기다리느라 다소 무료해진 나는 단상에 서서 상상한다. 장인이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는’ 순간, 신랑과 장인이 서로에 대한 애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길로 식장을 뛰쳐나가는 거다.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고. 느닷없이 자기 결혼식 한복판에서 신랑과 아버지를 동시에 잃게 된 신부는 충격에 빠진다. 이때 나는 주례로서 나직하게 위로하는 거다. “괜찮아. 티모테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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