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해봤어?[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11〉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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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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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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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여러분, 모두 하고 계십니까? 하고 계시다면 어디까지 해보셨습니까? 자녀 성(性)교육 말입니다. 저는 사실 우리나라 공교육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제 학창 시절과 달리 성교육 정도는 학교에서 어련히 알아서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에게 느닷없이 ‘섹스’를 가르치게 될 줄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아이에게 섹스는 아기를 낳을 의도가 아니라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아이는 그와 같은 욕망 자체를 나쁘게 여기고 있더군요.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결국 진실부터 말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너를 낳으려고 그랬던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어서 섹스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엄마와 아빠는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아이는 다행히 충격을 먹진 않았습니다. 충격은 도리어 제가 먹었죠. 섹스에 관한 아이의 이해 수준이 제 학창 시절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서요.

때는 1991년, 중학교 2학년 생물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사람의 생식 기관과 수정을 배우던 중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은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교실은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한 가운데 한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높이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도 해보셨습니까?” 친구의 말은 선생님도 섹스를 해보았냐는 뜻이었고, 그 뜻을 대번에 알아차린 선생님은 자신의 손바닥으로 친구의 얼굴을 있는 힘껏 때렸습니다. 계속 때렸습니다. 우리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섹스가 아무리 궁금해도 어른들 앞에서는 속내를 감추는 편이 신상에 이롭다는 교훈은 얻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어른들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그만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매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 말에 의하면 성교육을 따로 받은 기억은 없다고 합니다. 적어도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섹스(생물학적 성)와 젠더(사회문화적 성)의 차이를 가르치는 것보다 늘 예고 없이 터지는 ‘불미스러운 사건’ 예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짓궂은 질문에 다짜고짜 친구의 귀싸대기부터 날린 선생님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성교육을 건너뛴 성폭력 예방 교육은 사칙연산도 못 하는 아이들에게 연립방정식부터 가르치는 셈이니까요.

섹스로 시작된 아이와 저의 대화는 자위에서 멈췄습니다. 자위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그동안 자위를 스스로 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는 요즘 한창 자기 몸의 변화에 민감하거든요. 조만간 엄마 몰래 귓속말로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아빠도 해봤어?”라고. 그럼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 아무래도 성교육은 저부터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권용득 만화가
#육아#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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