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도 문희상 국회의장처럼 징용 배상문제 해결책 하나를 제안했다. 지난달 31일 일본 위성방송인 BS후지에서 “한일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경제협력기금이라면 일본 기업이 돈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안은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사흘 전 교도통신이 유사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양국 정부가 “논의한 바 없다”고 부인했기 때문이다.
가와무라 간사장을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일본 기업이 ‘배상금’ 명목으로 절대 돈을 낼 수 없다. 그 순간 일한(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경제협력기금’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확신에 찬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올해 여름 고노 다로(河野太郞) 전 외상(현 방위상)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 경제협력기금안을 논의했다. 그 후 한국에서 답이 없었다. 청와대에서 노(NO)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총리에게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총리 주변 인사는 ‘생각해 볼 수 있는 안’이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정치권도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다만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는 아베 총리와 각료들의 주장만 공개되다 보니 일본의 의지에 대한 의문이 큰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내 미묘한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이낙연 총리를 만났을 때 “한일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민당 의원들은 “아베 총리가 그런 말 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일본의 원칙만 반복해 발언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지난달 27일 한 토론회에서 “한국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 어떻게든 타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언론사 간부는 “한국이 노력하고 있으니 일본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내에 던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직은 한일 간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간극은 크다. 특히 ‘일본 기업의 배상’이란 핵심 쟁점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된다. 도쿄에서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1일)와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회의(4일)가 잇따라 열려 한국 의원들이 대거 방일했지만, 의견 차이만 확인했다.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가 “피 흘리지 않고 살을 1파운드 베어 내야 한다”고 말했던 상황은 아직은 지속되고 있다.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2일 도쿄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며 “2017년 도쿄에서 의원연맹 합동총회를 했을 때는 아베 총리와 면담했는데, 올해는 못 했다. 하지만 일본 측에 항의할 수가 없었다. 가와무라 간사장이 얼마나 한국을 위해 애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 계속 눈길이 갔다. 강창일-가와무라의 관계를 비롯해 양국 간 두터운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다면 피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낼 길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