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3법’ 처리 1년만에 합의… 누적 이용자 1000만 스타트업
매장 방문 횟수-메뉴-결제액 등 발 묶여 있던 정보 무궁무진
빅데이터 기반 스타트업들 희색…美 유사 서비스처럼 대박 기대
3가지 법 긴밀하게 연결돼 적용… 국회, 한번에 통과시켜야 실효성
일각 “사생활 노출-상품화” 반발… 활용범위-처벌조항 명확히 해야
최근 사람 많은 식당을 찾으면 문 앞에 태블릿PC 한 대가 놓여있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화면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카카오톡으로 대기 순서가 몇 번인지, 예상 대기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전송된다. 그 덕분에 춥거나 더운 날 기약 없이 줄을 서 있거나 “내가 먼저”라며 실랑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2014년 창업한 스타트업 나우버스킹의 이 서비스는 이달 기준 국내 누적 이용자 수 1000만 명을 넘었다. 태블릿 예약 대기 서비스 중엔 국내 1위다. 대기 처리 외에 포인트 적립, 스마트오더 및 결제 서비스, 단골고객 마케팅도 제공한다.
미국에선 유사한 서비스인 ‘토스트’가 올 3월 기업가치 3조 원을 인정받았다. 손님 관리 데이터와 매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온라인 주문 배달과 경영 보고서까지 제공하는 레스토랑 관리 플랫폼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나우버스킹에도 이런 신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간 발목을 잡아온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여야가 처리를 합의함에 따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 1년 만에 국회 통과 가시화된 데이터 3법
12일 여야가 “19일 본회의를 열고 데이터 3법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합의하자 신산업계에 모처럼 화색이 돌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 여당이 의원입법 형식으로 데이터 3법을 발의한 지 꼬박 1년 만에 들려온 낭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신산업계는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금과는 다른 판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관련 부처의 유권해석과 법률 자문까지 거쳤어도 막상 사업을 하려면 실제로 쓸 수 있는 데이터들이 한정돼 공격적인 사업 확대나 시장 확장이 어려웠다.
나우버스킹만 해도 그간 쌓아두고도 이용할 수 없었던 고객 데이터가 무궁무진하다. 매장 방문 횟수와 주기, 자주 주문하는 메뉴와 결제 금액, 결제 수단 등은 시장 조사 비용이 충분하지 않은 소상공인들에게 천금같은 마케팅 정보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법안이 통과돼 가명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카드사의 결제 데이터와 조합해 정확도도 높고 더 풍부한 정보를 만들 수 있다.
그간 나우버스킹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에서 규정하는 ‘제공자 동의 없이 사용 가능한’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아 이런 데이터를 식당과 공유할 수 없었고, 프랜차이즈 기업들과 제휴할 때도 기준이 천차만별이라 매번 시스템을 바꿔야 했다. 신규 서비스를 기획할 때마다 전담 자문 변호사에게 나가는 비용도 만만찮았다.
최근엔 새로운 시장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경기도가 민원인 대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관심을 보였지만 개인정보 문제로 서비스 도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마음껏 활용하려면 아예 독립된 서버를 구축하고 보안 인증을 받으라고 경기도가 요구했고, 비용이 너무 컸다.
2015년 설립한 빅데이터 기반 부동산 시세 분석 스타트업 빅밸류도 마찬가지다. 빅밸류는 실거래가, 건축물대장, 인허가정보 등 공개된 데이터를 조합해 ‘나홀로 아파트’의 시세 분석 플랫폼을 은행에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중에 공개된 한정된 정보만 쓸 수 있어 다양한 분석 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김진경 빅밸류 대표는 “법안이 통과돼 은행권이 갖고 있는 투자 및 자산관리 데이터를 익명 처리해 공유하면 이를 기존 부동산 데이터와 결합해 지역별, 구역별 투자 성향이나 주기와 같은 새로운 분석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중국과 홍콩, 대만 여행사와 손잡고 국내 식도락 관광상품을 공급하고 있는 레드테이블의 도해용 대표는 “한국에 온 외국인도 내국인처럼 동일하게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받아 데이터 수집에 적극 나서지 못했지만 이제 해외 관광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자체 데이터를 모아 상품 개발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 3법 한 번에 처리될까…14일 상임위가 관건
“데이터 3법을 다 처리할 수 있을지, 2건을 우선 할지는 논의해 봐야 한다.”(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민국이 너무 뒤처져 있다. 최대한 우선 통과시킬 것.”(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날 여야가 극적으로 본회의 개최와 데이터 3법 등 주요 법안 통과에 합의하면서 사실상 공은 각 상임위로 넘어가게 됐다. 1년간 데이터 3법이 표류했던 이유는 법 자체의 방대함과 복잡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각 법률안의 소관 부처와 국회 위원회가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소관 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는 그간 세 차례 법안소위를 열고도 내용이 방대하다며 법안 처리를 미뤘다. 정보통신망법 소관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아예 개인정보보호법 통과 이후에 처리하는 것으로 일정을 미뤄왔다. 신용정보법은 정무위원회 소관이지만 당장 지난달 24일 열린 소위에서도 의원들의 이해가 부족했고 입장 차이도 컸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데이터 3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적용된다. 개정안이 각 상임위에서 충분히 합의 과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동시에 처리돼야 하는 이유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통계작성과 연구 등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은 이 같은 가명 정보를 상업적 목적의 통계작성과 금융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용정보를 통제·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신용정보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점이 핵심 내용이다. 정보통신망 개정안은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관리·감독권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이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 3법은 서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법안 한 개만 통과가 지연돼도 규제 해소의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책임 구조도 명확히 해야
12일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데이터 3법 입법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명 정보의 유통을 허용하고 개인에게 신용정보 통제권을 이관하려는 흐름에 대해 기업들이 ‘빅브러더’처럼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회견에 참석한 참여연대 정보인권사업단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를 상품화하고 가공해 판매하도록 하는 건 우리 국민의 생활을 모든 사람에게 노출시키고 이윤 수탈 대상으로 삼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서채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간사도 “데이터 3법은 가명 정보를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활용한다는 데 방점이 있다. 법안들의 구체적 내용을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에게 폐해를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해외는 어떨까. 유럽연합(EU)은 지난해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통합 시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빅데이터 산업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업적 목적을 포함한 모든 연구에 가명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 골자다. 일본도 2015년 관련법을 개정해 당사자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익명 가공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데이터 시장에서 제일 앞서 나가고 있는 미국은 이미 소비자 정보를 수집해 익명 가공한 뒤 판매하는 ‘데이터 브로커’가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이렇게 수집된 가명 데이터는 소비자에게 개인 맞춤형 상품 추천, 온라인 거래 사기 위험 방지, 맞춤 광고 제공으로 이어진다.
데이터 3법의 통과는 시대적 흐름의 결과이지만 데이터 사용 권리에 따르는 책임도 산업계가 분명히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법 과정에서 가명 정보와 활용 목적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시민사회에서 우려하는 ‘무분별한 가명 정보 남용’에 대해 엄격한 처벌 조치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데이터 3법 개정을 통해 데이터 경제 혁신의 토대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며 “빅데이터 활용을 자유롭게 허용해 주되 사고가 발생하거나 사회적 위험이 가중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조사권을 발동해 책임구조를 명확히 밝히고 후속 조치를 취하도록 법률안을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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