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웨이브 머리의 여성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른손엔 손거울을 들고 왼손으론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다.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희고 볼은 빨갛게 상기되었다. 조금은 지쳐 보이기도하고 긴 생각에 잠긴 것도 같은 그녀는 누굴까? 화가는 왜 거울 보는 장면을 그린 걸까?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가장 아끼던 초상화였다. 모델은 조안나 히퍼넌이란 아일랜드 여성으로 ‘조’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는 사실 쿠르베의 동료화가 존 애벗 맥닐 휘슬러의 모델이자 오랜 연인이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이었던 그녀 역시 화가였지만 모델로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사회통념상 특히 누드모델은 창녀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기에 휘슬러의 가족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휘슬러는 한때 자신의 그림 판매 권한을 맡길 정도로 그녀를 신뢰했다.
이 그림은 세 사람이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함께 지낼 때 그려졌다. 당시 쿠르베는 47세, 휘슬러는 32세, 조는 23세로 나이차는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 쿠르베는 붉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조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듯하다. 거의 똑같은 그림을 무려 네 점이나 그렸다. 제목에도 그녀의 성 대신 애칭인 ‘조’를 붙였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이 그림은 화가 자신이 소장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평생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
거울을 본다는 건 자신을 응시하는 행위다. 쿠르베는 조가 거울을 보며 스스로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인지 자각하길 바랐던 걸까. 아니면 그녀의 소소한 일상마저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노르망디에서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는 이듬해 파리로 가서 쿠르베의 논란 많은 누드화의 모델이 된다. 변치 않는 우정은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조와 휘슬러는 연인관계를 청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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