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는 어제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열어 “양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연합훈련을 조정하기로 했다”고 양국 국방장관이 밝혔다. 북-미 협상의 촉진을 위해 북한이 반발하는 연합훈련의 축소 조정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유지를 거듭 요구했다.
한미 간 연례 동맹회의인 SCM의 의제는 군사대비태세 점검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미래안보협력 방안 등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선 분담금과 지소미아, 나아가 연합훈련 조정 같은 주변 의제가 공식 의제들을 압도한 형국이 됐다. 한미는 분담금과 지소미아 문제에선 이견만 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을 만나 안보상 신뢰 문제를 들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는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회의는 북한의 대미 압박 기회로 이용되면서 핵심 요체인 한미동맹의 강화·발전 논의는 과연 있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북한은 에스퍼 장관 방한에 앞서 연합훈련을 격렬히 비난해 곧바로 “훈련 태세를 조정할 수 있다”는 반응을 받아냈고, 14일 밤엔 북-미 실무협상 재개 의사를 밝히며 국면 전환을 꾀했다. 이에 한미는 연합훈련 조정 방침으로 화답했다. 동맹회의가 북-미 협상의 멍석을 깔아주는 자리가 된 것이다.
군사는 외교가 실패할 때를 대비하는 최후의 수단이고, 그 전까지는 강압과 회유 사이를 오가는 외교를 뒷받침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북한의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면 군사가 외교를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외교의 조롱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된다 한들 제대로 이뤄지긴 어렵다. 마냥 북한에 끌려가는 꼴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더욱이 우리 정부는 어떤가. 북한은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며 진작 금강산관광에 대한 ‘최후통첩’을 보냈다지만 정부는 이를 숨겨왔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도 않고 송환했다. 매년 참여하던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에서 돌연 빠지기까지 했다. 그런다고 북한이 태도를 바꿀까. 코웃음만 치지 않을까 싶다. 언제까지 북한에 안달복달하며 국가적 자존심마저 훼손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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