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15년 11월 어느 날의 일이다.
퇴근 무렵,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대표 비서실로 들어섰다. 당시 양 원장은 별다른 직책이 없었지만 문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2016년 총선과 차기 대선 준비 기초 작업을 맡고 있었다.
“저녁 약속 없는 사람들은 나랑 좀 가자”며 양 원장이 비서실 동료들을 끌고 간 곳은 서울 홍익대 앞의 한 술집. 양 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사장님 계시냐”고 물었고, 사장도 이런 양 원장이 익숙한 듯 심드렁하게 “또 오셨냐”고만 대꾸했다.
알고 보니 양 원장은 그 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동석자를 바꿔가며 ‘별주부’라는 술집을 여름부터 숱하게 찾고 있었다. 비서실 동료들이 “눈이 참 컸다”고 기억하는 그 사장은 결국 2016년 2월 민주당에 입당했고, 두 달 뒤 총선에서 당선됐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다.
당시 양 원장을 비롯한 친문(친문재인) 진영과 민주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새 인물로 인적 쇄신의 바람을 일으켜 총선에서 승리해야 다음번 대선도 이길 수 있다는 절박감이었다. 영입에는 홍영표 최재성 박광온 의원 등 친문 핵심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삼성전자의 첫 고졸 출신 여성 상무인 양향자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은 당시 “한번 만나기라도 해달라”는 민주당 인사들의 숱한 연락을 받고 있었다. “제대로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치권 입문을 반대하는 남편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간 양 전 원장을 맞이한 인사는 다름 아닌 문 대통령. 양 전 원장의 임원 승진 인터뷰를 담은 동아일보 기사까지 읽고 온 문 대통령은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며 5시간 동안 양 전 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남편조차 “한번 해보라”고 했고, 양 전 원장은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수혁 주미 대사,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주민 김병관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입당 동기들이다.
4년 전 일을 꺼내드는 이유는, 2년 6개월째 반복되는 청와대의 구인난 타령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개각이 예고돼 있지만, 청와대는 “후보자들이 모두 손사래 친다”며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인사 검증에 대해 높아진 국민 눈높이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과연 청와대가 4년 전 야당 시절처럼 치열하게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되짚어 볼 일이다. 당시 인재 영입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친문 인사는 “2000여 명을 리스트로 추렸고, 200여 명을 실제로 만났다. 그중 20여 명이 입당했다”고 했다. 1%의 확률에 도전한 것이다.
지금 청와대는 어떤가.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청와대 참모는 “책상에 앉아 손가락으로만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직접 뛰며 후보를 찾지 않고 밑에서 올라온 인사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4년 전 민주당은 대척점에 있던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도, 그토록 경원시하던 대기업 출신도 가리지 않고 영입했다. 개각 때마다 돌려 막기와 코드 맞추기 논란에 시달려 온 지금의 청와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구인난을 인사 라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당시 민주당은 전체가 인재 영입에 매달렸다. 반면 “청와대 참모들 모두가 인재 추천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여당 중진 의원은 “국정의 중추인 장관들을 절실하게 찾고 있는지 여권 전체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돌며 청와대는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구해 탕평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임박한 개각은 그 약속이 지켜질지, 또 하나의 공염불이 될지 보여주는 무대다. ‘회전문 인사’와 ‘코드 인사’ 꼬리표를 이제는 정말 떼야 할 때가 됐다. 4년 전, 야당 시절을 떠올려 본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