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위치한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회고록 출간을 기념하는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학생 50여 명이 강연장에 들어와 회고록을 찢기 시작했다. “당신은 살인자”란 외침 속에 종잇조각이 강연장에 휘날렸고, 올랑드 전 대통령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릴뿐만이 아니다. 파리를 비롯해 리옹, 보르도 등 프랑스 주요 도시의 대학에서 학생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집단 시위에 나선 이유는 또래의 분신 사건 때문이다. 리옹2대학에 다니는 아나스 씨(22)는 8일 학생식당 앞에서 분신을 시도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그는 “굶는 게 힘들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불평등에 맞서자”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올랑드 등 전·현직 프랑스 대통령들을 비판했다.
이에 공감한 학생들이 개선책을 요구하며 집단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를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랑스 청년들이 정말 그렇게 힘들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프랑스는 복지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나라다. 실제 아나스 씨의 학비는 무료였고, 월 450유로(약 58만 원)의 생활장학금도 받았다.
잘사는 나라의 나약한 복지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떠나지 않았다. 프랑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파리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상당수는 최대 월 500유로(약 64만 원)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부모의 지원이 있으면 버틸 만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집세, 교통비 등으로 쓰고 남은 돈 100유로(약 13만 원) 정도로 한 달 식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었다.
프랑스 최대 학생단체 FAGE에 문의하니 학생의 20.8%가 빈곤 위기에 놓여 있고, 50%가 생활비를 이유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마할 씨(21)는 “장학금에 의존하다 보니 우리끼리 ‘500유로에 목맨 세대’라고 한다”며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해 졸업이 늦어지고, 빈곤 기간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집세가 너무 올라 부담이라는 대학생 소피 씨(22)는 “기성세대는 융자를 받아 집을 여러 채 만든 후 임대해 재테크를 한다. 학생들이 저렴하게 살 곳이 없다”며 화를 냈다. 기자가 거주하는 파리15구 부동산에 따르면 20m²(약 6평)도 안 되는 원룸 월세가 600∼800유로에 달했다.
프랑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연 1000만 원이 넘는 등록금과 좁은 취업문 등 한국 상황과 비교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했던 기자의 태도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꼰대의 전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청년세대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도 다시 보게 됐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42개국의 1983∼2002년생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물은 결과 한국은 100점 만점에 27점에 불과했다. 프랑스 23점, 영국 29점, 독일 28점 등 유럽 선진국도 낙제점이었다.
청년 문제는 특정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세계적 난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청년들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말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무엇을 내려놔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