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산에 비 막 그치고, 저녁 되자 날씨는 가을 기운/밝은 달은 솔 사이로 비치고/맑은 물은 바위 위를 흐른다./대숲 시끌시끌 빨래하던 여인들 돌아가고/연잎 흔들흔들 고기잡이배들이 내려간다./제멋대로 봄꽃은 지고 없지만, 왕손처럼 느긋하게 이곳에 머무르리. (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 竹喧歸浣女, 蓮動下漁舟. 隨意春芳歇, 王孫自可留.) ―‘산장의 가을 저녁(山居秋暝·산거추명)’ 왕유(王維·701∼761)
가을 저녁 고즈넉한 풍광이 그림처럼 일렁인다. 달빛, 소나무, 샘물과 바위, 빨래하는 여인, 고깃배 등 산속이 결코 외롭지 않으련만 왜 굳이 ‘빈산’이라 표현했을까. 무욕(無欲) 혹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서 혼연히 자연 속에 몰입되었다는 토로일 터다. 자기 존재나 모든 행위마저 자연의 일부로 끌어들였을 때나 가능할 법한 발상이다. 심경이 그러하니 설령 꽃이 다 져버렸다 해도 마냥 산속에 머물 수 있다. 가을 기운이 완연한데 느닷없이 봄꽃 타령이라니, 다소 뜬금없다 싶기도 하지만 시인이 즐기는 자연의 멋이 속인(俗人)의 그것과는 결이 다름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겠다. 왕손(王孫)은 귀족 자제 혹은 은둔자라는 의미인데 이 비유 속에는 자신을 자연의 섭리와 공적(空寂)에 고스란히 맡겼다는 자긍심 같은 게 담겨 있다. 제3구와 4구, 제5구와 6구는 각각 서로 대구(對句)로 짝을 맞추는 게 율시(律詩)의 정형이라, 번역도 낭송의 리듬을 살려 글자 수가 대칭되게 바꾸어 보았다.
왕유는 당대 산수시의 비조(鼻祖)로 불릴 만큼 담담하면서 운치 있는 시풍을 자랑했고 산수화에도 뛰어났다. 서예와 음악에 정통했고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시불(詩佛)로 불리기도 했다. 소동파는 “그의 시를 음미하면 그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을 볼라치면 그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시중유화, 화중유시)”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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