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역사는 인간애와 인권의 존엄성 위에 건설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2일 03시 00분


역사의 사실은 국민이 선악 평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남북관계
인간애-자유 빼앗긴 北동포 살펴야… 北어부 강제북송, 중차대한 문제
생명의 존엄성, 정치 수단화 말아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역사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헤겔이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라는 말을 남겼다. 역사는 스스로를 심판한다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사필귀정’이라는 정신을 믿고 있다.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들은 반드시 선악의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이다. 그 뜻은 무엇인가. 5년 동안의 정치는 50년 역사에서 평가되며 100년 후에는 그 선악 결과가 확인된다는 뜻이다. 현 정권이 하는 일은 국민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유엔 같은 세계기구에서는 그 선과 악을 가려준다는 뜻이다.

우리는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이 역사를 건설한다는 한시적인 관념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역사를 책임 맡은 정권은 공보다 과가 더 많기도 하고, 건설보다는 파괴가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 담당자들은 역사의 심판은 엄격하다는 사실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역사적 과제는 남북관계이며 그 목표는 민족 전체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통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는 있다. 국민도 우파 정권보다는 좌파 정권이 앞장선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결국은 민족 전체의 의무와 책임이기는 해도.

그런데 광복이 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부터 남과 북은 손을 잡거나 대화하기에는 지나치게 먼 간격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국제무대에서 공존할 수 있는 정치, 경제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은 유일하게 세계 속의 고립된 폐쇄사회로 전락했다. 이미 공산사회주의의 규범을 포기한 김일성 왕가의 독재국가로 변신한 지 오래다.

그래서 유엔을 비롯한 선진 국가들은 북한 동포를 구출하고 그 독재 폭정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씨 왕가의 정권을 배제하든가, 스스로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치적 과제로 등장한 것이 인권문제이다. 2000만 북한 동포를 지금과 같은 인간애와 자유를 빼앗긴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역사와 인류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에 주어진 책임은 무엇인가. 북한 동포를 위한 친(親)북한 정신과 북한 정권에 대한 반(反)정권 운동이 동시에 요청되는 괴리관계에 처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경제수준을 높여주면 절대빈곤에서 해방될 수 있고 경제적 격차가 작아지면 중국 같은 개방정권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정책을 택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철학과 독재정권의 생리를 잘 몰랐던 것이다. 우리의 경제적 협조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협조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국익과 친북정책의 모순 속에서 아무 결과를 얻지 못하고 끝났다.

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개방과 통일의 길을 열어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격이 친북한동포가 아닌 북한 정권과의 친화로 잘못 가는 것 같은 인상을 주거나 그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친북정권으로 가면 종북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정책은 세계적 호응을 얻기 힘들며 유엔 정책에도 상반하는 결과가 된다. 자유민주 국가의 위치에서는 위험성을 내포할 수도 있다. 그 핵심이 되는 문제가 ‘인권’이다. 자유와 인간존엄의 절대적인 과제이다. 한일관계 해결의 근저에도 같은 문제가 깔려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두 어부의 강제북송 사건이 유엔과 세계적 관심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적 동의도 무시하고 사건의 진실 해명과 법적 절차도 없이 강제 북송했다는 사실은 중차대한 문제다. 현 정부가 정책방향과 역사적 선택을 숙고하지 못한 결과이다. 후진적이고 반인륜적인 과오를 범했다는 질책을 모면할 수가 없다. 그 사건 자체를 경시했다는 정부의 양식을 의심하는 사태를 만들었다.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저지른 일이라면, 대한민국 정권을 위해 인권을 제물로 삼는 후진 국가로 격하시키는 결과가 된다.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인권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북한 정권과 동질 사회로 전락할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려워진다. 역사의 건설은 인간애의 회복과, 자유로운 선택을 위한 인권 수호와 더불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인간애#인권#북한 어부 강제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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