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까놓고 말해서[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5일 03시 00분


BBC팀이 영국 왕실이 거주하는 버킹엄궁에 직접 들어가 앤드루 왕자(왼쪽)를 인터뷰하는 모습.
BBC팀이 영국 왕실이 거주하는 버킹엄궁에 직접 들어가 앤드루 왕자(왼쪽)를 인터뷰하는 모습.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요즘 각본 없는 인터뷰나 기자회견이 유행이라지만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각본 ‘있는’ 인터뷰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각본도 있고, 사전준비도 철저히 한 인터뷰 말입니다. 최근 BBC 인터뷰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아까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다르고, 진행자의 질문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1시간 내내 다리 꼬고 앉은 모습은 의혹을 해명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돼 감옥에서 목숨을 끊은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한 사이였을 뿐 아니라 그의 주선으로 미성년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Without putting too fine a point on it.”

‘까놓고 (직설적으로) 말해’라는 뜻입니다. BBC 여성 진행자가 “2001년 미성년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느냐”고 묻자 앤드루 왕자는 “까놓고 말해 남자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어떻게 함께 밤을 보낸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나는 그 여성이 기억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횡설수설에다가 여성 비하적 태도까지 드러난 대답입니다.

△“There‘s a slight problem with the sweating.”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그가 “얘기하거나 밥 먹을 때 땀을 많이 흘렸다”고 말합니다. 앤드루 왕자는 “그 주장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반박합니다. 즉 자신은 땀이 안 나는 무한증(無汗症)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입니다. “땀 흘리는 거 많이 본 거 같은데” 하면서 말이죠. 이후 무한증은 영국 의료계의 최대 화제로 떠오르는가 하면 앤드루 왕자의 비서는 “대머리 치료제 부작용으로 무한증이 됐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I would describe as a constant sore in the family.”

앤드루 왕자의 두 딸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또 영국 왕실은 이런 추문에 연루된 것이 얼마나 창피할까요. 앤드루 왕자는 “가족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Sore’는 ‘염증’ ‘고통’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동정심 유발 작전은 별로 표를 얻지 못합니다. “고통을 줄 일을 애초에 안 했으면 됐잖아.” 대중의 질타만 이어질 뿐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앤드루 왕자#성매매 혐의#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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