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 사라진 한국당, 왕만 바라보는 ‘궁중정치’만 남아”[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6일 03시 00분


“黨해체” 돌직구 날리며 불출마 선언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당은 왕에게만 잘 보이려는 궁중정당”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김 의원은 당 해체에 버금가는 인적 쇄신을 촉구하는 불출마 선언에도 요지부동인 한국당의 현실을 ‘궁중정치’에 비유했다. 그는 “불출마 선언 이후 당내의 얼음장 같은 냉소와 길거리의 뜨거운 응원을 동시에 받는 경험을 매일 하고 있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당은 왕에게만 잘 보이려는 궁중정당”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김 의원은 당 해체에 버금가는 인적 쇄신을 촉구하는 불출마 선언에도 요지부동인 한국당의 현실을 ‘궁중정치’에 비유했다. 그는 “불출마 선언 이후 당내의 얼음장 같은 냉소와 길거리의 뜨거운 응원을 동시에 받는 경험을 매일 하고 있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당이 얼마나 민심과 괴리됐는지를 요 며칠간 극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17일 전격 불출마 선언과 함께 당 해체를 주장한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47·부산 금정)은 자신의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조용한 당내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좀비이자 존재 자체가 민폐인 한국당은 해체해야 한다”며 소속 의원 전원 불출마 등을 주장한 지 26일로 10일째. 하지만 당에선 호응과 지지보다는 국회의원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이 더 자주 터져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은 당 일각의 비아냥 섞인 비판에 “속된 말로 같잖아서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있다. 이래서 당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 아니냐”면서도 “거리에서는 처음 보는 이들이 손잡고 응원하는 경험의 연속”이라고 했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당 해체와 의원 전원 불출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고관대작형이 아니라 실무형이 돼야 하며 예우를 장관급에서 국장급으로 낮춰야 한다”고도 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


○ “한국당, 왕만 바라보는 ‘궁중정치형’ 정당”

―기자회견 이후 당내 호응이 별로 없는데 속상하지 않나.

“왜 없나? ‘우물에 침 뱉기’ ‘자기 집에 불 지르기’ 등의 반응들은 있었지 않나? 사실, 국회의사당 2층 로비에서 방송 촬영을 하려고 앉아있는데 동료 의원 한 명이 ‘에이∼’ 하면서 흘겨보며 지나가기도 했다. 바로 내 앞에서 아주 싫은 기색을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 면전에서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식 중인 황교안 대표를 만나러 갔을 때도 주변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의원 단톡방에선 친박(친박근혜)계 초선이 “(김 의원이 원장인) 여의도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자고 해도 안 알려주시더니 또 이런 식으로 알려주시네. 그 결과가 그렇게 나빴던 모양이다. 그럼 다음 총선에 나가봤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겠네요”라고 비아냥댔다는데….


“같잖아서 대답을 안 했다. 하지만 몇몇 의원이 (격려의) 연락을 주시기도 했고. 오히려 거리에서 전혀 모르는 시민들이 반갑게 손을 꽉 잡고 ‘기운 내라’ ‘응원한다’고 하는 경험을 하루에도 수차례 겪고 있다. 당이 이런 민심과의 괴리를 자각 못 하기에 지금의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탈출 못 하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생각해서 충정 어린 고언을 한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총선 패배 시 사퇴’로 대응하는 등 지도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인데….

“그래서 소멸할 수밖에 없는 당이라고 하는 것이다. 외부 여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잘해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되겠나. 자체적으로 시대에 맞는 시민정치 의사형성 통로로서의 정당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생존 징후랄까, 그런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불출마 선언은 이어지지 않고 ‘당이 원하면 불출마한다’는 정도의 얘기만 나온다.

“‘궁중정치’만 남아서 그렇다. 한국당은 왕(당 대표)에게만 잘 보이려는 변질된 궁중정치형 정당이 돼 버렸다. 의원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 공천에 유리할지에만 몰두하면서, 당이 민심과 괴리가 너무 큰데도 그런 자각조차 없어졌다. (다른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려면) 내가 불출마 선언을 할 때 수위를 아주 높여 말씀드렸기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고 진정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뒤의 문제는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지금 당장 후속 불출마가 바로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래도 당 총선기획단에서 ‘현역 3분의 1 컷오프, 50% 물갈이 공천안’을 내놨지 않나. 이 정도면 변화의 기운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그런 말들은 당내 문제의 본질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당이 거의 죽기 직전인데 (3분의 1 컷오프 같은) 양적 지표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의 뿌리가 훨씬 깊기 때문에 (당초 주장한) 당 해체와 현역 의원 전원 불출마 외에는 답을 찾지 못했다. 현재 상태로는 자체 역량으로 회생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지역구에서 아버지(5선·고 김진재 의원)와 합쳐 8선을 한 걸 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처럼 ‘부모 찬스를 써놓고 혼자 깨끗한 척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제가 더 이상 (선거에) 안 나오지 않냐.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저부터 자성과 반성을 행동으로 옮기겠단 거다. 누가 저 혼자 깨끗하다고 했느냐.”


○ “쇄신파 사라진 한국당, 민심과의 가교 없어”

―지금 생각해볼 때 기자회견에서 ‘좀비’ ‘존재 자체가 민폐’ 등 독한 단어를 쓴 이유가 있나.

“지금 한국당에는 (18대 국회 한나라당의) ‘민본21’ 같은 소장파 모임이 없다. 이번 기자회견은 민본21 선배들의 기백을 생각하며 혼자 10명 이상의 몫을 해내리라 마음먹고 단행했다. 그래서 표현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친 표현에 마음 다친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틀린 표현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민본21이 있을 때는 민심과의 가교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당과 민심의 괴리가 너무 크다. 그동안 누적된 걸 한꺼번에 말하다 보니까 발언 수위가 강해졌고, 민심이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살아있는 정당이었다면…(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한국당에는 왜 소장파가 사라졌다고 보나.

“그래도 페이스북에 계속 글 쓰시는 당 대표 출신인 뜻밖의 소장파가 있지 않으냐(웃음). 18대 때는 친이(친이명박)에 의한 친박 학살, 19대 때는 친박에 의한 친이 학살, 20대 때는 친박에 의한 소장개혁파 학살이 지속되면서 당내 다양성이 완전히 파괴됐다.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들까지 역할을 못 하게 돼 바른정당으로 가면서 지금의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 의원은 바른정당으로 탈당했다가 돌아온 복당파이기도 해 보수통합의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지금까지는 그에 대한 요청을 받은 바 없어서 따로 생각해본 바 없다. 다만 통합과 관련해 요청이 있고 제가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해볼 수는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요청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기자회견 직후) 변혁 소속 의원 두 분에게서 위로와 격려의 취지로 짧게 문자메시지가 온 적은 있다. 따로 만나진 않았다.”


○ “고관대작형 없애고 장관급 아니라 국장급 국회의원 돼야”

―김 의원이 생각하는 대안은 뭔가. 당 해체 이후 새로운 사람들이 와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 와야 하나.

“과시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 사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이나 다른 사람을 짓밟는 사람은 오면 안 된다. 국회의원이 되면 감투를 보고 절하는지 사람을 보고 절하는지 분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국회의원은 고관대작형이 아니라 실무형이 돼야 한다. 예우를 장관급에서 국장급으로 낮춰야 한다.”

―여의도연구원에서 그동안 청년 인재 양성과 영입에 집중했는데….

“지역구에 바로 나가서 최강자와 붙어도 당선될 정도로 준비돼 있는 청년을 아주 엄선해서 추천했는데 당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정말 귀한 분이라고 하지 않느냐. 이런 당에 누가 오나. 당에서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행사 때 지도부 사진 찍기 병풍 또는 마네킹용이다. 최근 당이 청년들 간담회에서 (한국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등) 이전에 없었던 솔직한 이야기들이 나오자 큰 충격을 받았는데, 사진 찍으려고 앉혀 놓은 마네킹이 진실을 이야기하니까 충격을 받은 거다.”

―당의 일부 중진들은 사석에서 청년 정치인을 ‘이등병’ ‘초딩’에 비유하더라.

“20일 유엔 아동권리협약 30주년을 기념해 유니세프에서 주최하는 ‘초중학생들과의 국회의원 토론회’에 갔다. 참신한 생각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나는 ‘여러분들이 국회에 오시는 게 더 좋은 국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시각이 초기에 약간 시행착오를 거치면 훨씬 더 의미와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47세로 (평균 나이 60.1세인) 한국당에선 어린 그룹인데, 딴 데 가면 할아버지급 아닌가.”

―앞으로 뭘 할 건가. 2004년 한나라당 때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불출마 선언을 하고 3년 후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 전 시장과 비슷한 행보라는 평가가 있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고 영광이다. 하지만 불출마 선언에서 밝혔듯 저는 정치권에 파견된 시민 입장에서 자격 없는 자가 끼면 이성을 잃는다는 ‘절대반지’에 대한 면역력을 아직은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임기 후 뭘 할지 저도 궁금한데, 지금 하는 일에 집중도가 떨어질 것 같아 생각을 아예 안 하기로 했다. 경우의 수는 많이 열려 있겠지만….”

○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생년월일: 1972년 7월 15일
△출신교: 부산 금정고-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주요 이력: 2006∼2009년 동일고무벨트㈜ 대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부산 금정, 무소속·한나라당·새누리당), 2011∼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부산 금정, 새누리당),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부산 금정, 새누리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 현재 한국당 여의도연구원장,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조동주 djc@donga.com·최고야 기자
#자유한국당#김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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