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지금은 정부가 단일 개혁안을 제안해도 실효성이 없고, 현실적으로 21대 국회가 들어서야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내년 총선을 앞둔) 11월이 되니 (국회의원 마음이) 95%가 지역구에 있다. 정책적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2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안을 정부와 국회가 서로 미루다가 20대 국회에서 처리가 난망해진 상황임을 자인한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이 치러지고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곧 대선 분위기로 접어든다. 표심을 거스르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금 재원으로 쌓아둔 국민연금기금 697조 원의 고갈 시기를 정부는 2057년, 국회예산정책처는 2054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금기금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현행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이 30%까지 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금 세대가 자산은 모두 써버리고 다음 세대에 빚만 남기는 셈이다. 개혁이 늦어질수록 다음 세대의 부담이 불어난다.
2017년 12월 출범한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8개월 논의 끝에 연금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보험료 인상(폭)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더 내고 더 받는’ 안에 제동을 걸었다. ‘덜 내고 더 받는’ 안을 만들 수 없던 정부는 그해 12월 현행 유지에 방점을 찍은 4개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다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미뤘고, 올해 8월 경사노위는 노사가 팽팽히 대립하다 3개 안을 국회에 던졌다. 이제 국회는 정부에 단일안을 내라고 하고, 정부는 국회서 논의가 실종됐다고 책임을 미룬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 시늉만 내는 것은 의지가 없어서다. 정부는 국회 탓을 하지만 역대 연금개혁의 성공 사례를 봐도 표(票)로 움직이는 국회가 추동한 적은 없었다. 2007년 소득대체율을 40%로 깎은 국민연금개혁, 2015년 소득월액의 9%로 기여율을 올린 공무원연금개혁은 정부가 개혁안을 내고 대통령이 직접 고통분담을 호소하며 국회를 압박한 결과였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이 보험료율 인상을 저지했을 때 이미 실패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렵고 인기 없는 개혁은 국회에 넘기고, 선심성 정책만 정부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청와대와 복지부가 국회보다 더 표 계산을 해서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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