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은 13분의 1, 그 이상이다[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7일 03시 00분


‘김명수 코트’ 전합 46건 중 첫 7 대 6 판결
모두 아닌 절반의 사법부, 피할 수 없었나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서울 서초구 대법원청사 11층 대법원장실 옆에는 113m² 크기의 방에 원탁과 의자 13개가 놓여 있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전원합의체 구성원 13명이 전체회의를 여는 곳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3년 8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송한 채널 사업자를 징계·경고한 결정에 대한 불복 소송도 이곳에서 논의됐다. 2015년 8월 11일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올 1월 전합에 회부돼 7월까지 5차례 전합 심리가 열렸다.

마지막 회의에서는 관례대로 지난해 12월 임명된 최후임 김상환 대법관부터 대법원장까지 서열의 역순으로 투표했다. 8번째 김재형 대법관이 결정취소 의견을 밝히면서 결정취소 쪽이 6 대 2로 결정유지 의견을 압도했다. 과반에 1표가 모자랐는데, 이기택 박상옥 권순일 조희대 등 선임 대법관들이 결정유지에 힘을 보태면서 6 대 6 동률이 됐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선택만 남았다.

이럴 경우 전합 재판장인 대법원장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불문율이다. 사회를 양분할 수 있는 첨예한 사건을 대법원장이 한쪽 편을 들면서 결정하면 대법원장이 여론의 직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부 신뢰와도 직결된다. 더구나 1, 2심 하급심의 일치된 결론을 상급심이 정반대로 뒤집을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1, 2심은 ‘백년전쟁’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고,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위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 4명 등과 뜻을 같이하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대법관 쪽에 섰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9월부터 이달까지 2년 2개월 동안 대법원의 전합 선고 판결문 46건을 전수 입수해 분석해보니, 이른바 ‘김명수 코트’의 7 대 6 판결로는 유일하다. 김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부담을 떠안고 선고한 첫 판결이기도 하다.

당초 지난달 예정되어 있던 선고는 판결문 작성이 늦어지면서 사건 접수 1563일 만인 21일 선고됐다. A4 81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격렬했던 전합 토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 특성별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을 반대의견은 “법치행정에 반한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정면 비판했다. 여기에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을 전적으로 오해하고 그 전제에서 비판한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반대의견의 보충의견은 다시 “(다수의견을) 수긍할 수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장이라도 전합에서는 그야말로 13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소수의견을 직접 내겠다고 했다.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 등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7 대 6으로 보수 성향 판결을 주도했다. ‘김명수 코트’는 적어도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양승태 코트’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사분오열되어 있는데,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전직 대통령 2명과 관련된 선고를 7 대 6, 그것도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터를 자처하면서까지 이 시점에 굳이 해야 했을까. ‘김명수 코트’의 구성이 내년 3월까지 바뀌지 않는데, 김 대법원장이 서둘러 선고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판사들에게 나오고 있다. 취임 2년을 넘기면서 김 대법원장에게 13분의 1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법원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김 대법원장이 이들의 진심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김명수 코트#김명수 대법원장#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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