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성장률 2.0% 달성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 여당은 목표 달성을 위해 예산 다 쓰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러다 연말에 또 멀쩡한 보도블록을 깰까 봐 걱정이다. 2.0%가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쓸모없는 일에 세금을 쓴다면 국민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다.
경제성장률, 즉 국내총생산(GDP) 실질증가율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숫자지만 국민의 실제 살림살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북 익산 장점마을처럼 비료공장의 공해물질로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하자. 그러면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살 때보다 GDP가 올라간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성장률 높아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것이 경제성장률의 한계다.
6개월째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홍콩은 어떤가. 지난해 1인당 GDP가 4만8000달러로 한국(3만1000달러)보다 훨씬 부유하다. 그러나 빈부 차가 극심해 세계적인 백만장자가 많은 반면 최저임금은 시간당 5700원(한국은 8350원)에 불과하다. 집값이 치솟아 집 한 채와 방 한 칸을 여러 가족이 나눠서 살고, 매일 밤을 맥도널드에서 보내는 ‘맥난민’도 많다.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높지만 ‘잘산다’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은 작년 경제성장률이 2.9%였고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1.5%로 절반에 그쳤다. 경제사회 시스템이 달라서인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성장률이 미국보다 낮고 실업률은 높다. 하지만 나보고 고르라면 국민 3000만 명이 의료보험 없는 미국보다 교육비와 노후걱정 없는 독일 프랑스를 선택할 것 같다. 독일과 프랑스도 고민과 문제가 많지만 말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들 한다. 수출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인 데다 주요 기업들의 투자도 줄어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나빠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체감하는 생활 여건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통계가 최근 나왔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2년 전보다 ‘전반적인 생활 여건이 좋아졌다’는 응답이 48.6%로, 나빠졌다(9.1%)보다 크게 높았다. 이 조사는 2년마다 3만7000명에게 실시하는 방대한 조사여서 국민의 인식을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2013년 좋아졌다(31%)와 나빠졌다(24%)가 비슷했던 때와 비교하면 생활 여건에 대한 긍정은 크게 높아지고 부정은 낮아졌다.
스스로를 중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58.5%로 2년 전 57.6%보다 높아졌다. 하층이라는 사람은 다소 줄었다. 중간층이라는 답은 2013년 51.4%로 가장 적었다가 그 후 매번 조사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경기가 나쁘고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생활 형편이 괜찮다는 답도 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물론 중요하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성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투자와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걷어내고 미래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은 필수다. 그래야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회안전망을 늘릴 재원도 생긴다. 하지만 이젠 성장률이 반영하지 못하는 ‘삶의 질’을 무시하면 안 된다. 경제 활동이란 결국 사람이 행복하게 잘살기 위한 것인데, 이 자명한 진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한국 경제의 현실과 방향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경제성장률뿐 아니라 삶의 질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로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더 살기 좋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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