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다 추락해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발명가인 아버지와 함께 미궁에 갇혔다가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 덕에 탈출한다. 하지만 더 높이 날고 싶은 욕망에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다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지고 만다. 비극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이카로스 이야기는 많은 화가들에게 인기 있는 그림의 주제였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도 이카로스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그는 성서나 속담, 신화가 주는 교훈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이카로스가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 같은 그림 속에는 밭에서 쟁기질하는 농부와 양 떼를 이끄는 목동, 그리고 낚시꾼이 등장한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낚시꾼 머리 위쪽으론 커다란 범선이 바다에 떠 있다. 이카로스는 바로 이 남자와 범선 사이에 있다.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몸은 물 아래로 곤두박질쳐 보이지 않고 두 다리만 물 밖으로 나와 버둥거리고 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그려졌다.
다른 화가들은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그려 어리석은 행동이 결국 자신을 망친다는 교훈을 주려 했지만 브뤼헐은 특이하게도 그의 비극을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 물에 빠졌지만 그림 속 인물 누구도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이나 죽음에 무관심한 세태를 풍자한 그림인 것이다.
그림에서 가장 눈여겨볼 인물은 사실 목동이다. 그가 하늘을 보며 한눈을 파는 사이 양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화가는 이카로스만큼이나 부주의해 보이는 목동의 모습을 통해 타인의 비극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내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450년 전 그림이 주는 교훈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하룻밤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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