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에 꽂힌 힙합 프로듀서가 있다. 여기서 뽕은 다른 뽕이 아니다. 뽕짝이다. 요즘 뜨거운 래퍼 이센스의 곡에도 참여한 DJ 겸 프로듀서 250(본명 이호형·37).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눈길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은 그가 한편에 자랑스레 진열해둔 뽕짝 CD들이었다. ‘7080 불타는 관광댄스 1, 2집’도 좋았지만 ‘나운도 전자올갠 종합편 1, 2집’…. 나훈아도, 설운도도 아닌 나운도의 ‘전자올갠’ 연주라니, 활자만으로 호기심과 구미가 당겼다. ‘힙합, 최신 전자음악을 섭렵한 이 프로듀서에게 무슨 사연이라도….’
#1. 250의 별난 뽕 사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족을 태우고 먼 길을 운전할 때 250의 아버지는 늘 그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고 한다. ‘이박사의 고속도로 메들리’. 평상시에는 클래식이나 고상한 발라드 가요를 선호하던 부친의 이상행동. 그의 한마디가 250의 귓전에 아직도 맴돈다고 했다.
“고속도로 운전할 때는 이걸 들어야 해. 그래야 안 졸려.”
#2. 어떤 음악은 인간의 복잡한 예술적 사고를 건드리지 않는다. 커피, 술, 약처럼 실질적인 효과를 인체에 끼친다. 그야말로 실용적 음악이다. 이박사의 뽕짝 메들리는 청자의 감상을 방해한다. 끊임없이 새된 소리로 ‘아, 좋아좋아좋아좋아’를 욱여넣음으로써 사색과 분석의 여지를 말살한다. 생각이 숨쉴 여백을 한바탕 소동으로 채워 버리는 청각적 카페인인 셈. 책만 펼치면 졸린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 활자보다 심리적 여백 때문이 아닐까.
#3. 음악의 실용적 측면을 극대화하는 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고음과 빠른 템포가 각성 효과를 준다면 저음과 느린 템포는 최면 효과 비슷한 것을 형성한다. 부서 회식 때 노래방에서 부장님이 부르시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떠올려보자. 기나긴 저녁 연회의 파장을 재촉하는 그 실용적인 음악의 어마어마한 효과를….
#4. 저음이 지닌 실용적 효과는 막대하다. 최근 영국의 영상 작가 듀오 ‘루벤과 제이미’는 떨어지던 물방울이 중력을 무시하고 거꾸로 솟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비결은 소리다. 물에 초저음을 분사했는데 주파수 25Hz에서 살짝 내려가던 물방울이 24Hz에서 평행하게 흐르다 23Hz에서 위로 솟기 시작했다.
#5. 인간은 20Hz에서 2만 Hz 사이 주파수 대역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선’이라는 밴드가 있다. 미국 메탈 밴드인데 영어로는 ‘Sunn O)))’라 쓰고 ‘Sun’처럼 발음해야 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직업상, 또는 좋아서 수천 개의 콘서트를 봤지만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공연을 셋만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선의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오로지 공연장에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듣는 게 아니라 느낀다는 게 핵심이다. 선은 일반적인 전기기타보다 더 낮은 음을 내는 7현 기타의 저음현을 더 낮게 조율해 연주한다. 여기에 전기기타의 증폭된 굉음과 앰프가 서로 간섭하며 내는 되먹임 소리를 활용한 초저음 노이즈를 더해 공연장을 메운다. 20Hz 안팎의 소리다. 초저음역을 내주는 특수 스피커를 여러 대 설치하는데, 가장 낮은 소리는 들리지는 않고 몸을 울린다고 한다.
#6. 23Hz에서 물방울이 중력을 이긴다면 그보다 낮은 소리는 어떨까. 혹시 신체 전역을 타고 흐르는 혈액에 특정한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선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드론 뮤직(drone music)’이다. 단조로운 음을 몽환적으로 끝없이 반복함으로써 듣는 이를 참선(參禪)의 경지 비슷한 것으로 몰아가는 부류. 인도의 시타르 연주부터 서구권의 실험적인 전자음악이나 록에 쓰이는 방법론이다. 선은 40, 50분간 계속되는 초저음 드론 연주로 듣는 이들을 그로기 상태에 빠뜨린다.
#7. 선은 다작의 밴드다. 얼마 전에 또 신보(QR코드)를 냈다. 올해만 해도 두 장째다. 음악을 들어보니 또 줄곧 그 소리다. 모터사이클이나 대형 여객기가 지나가거나 이륙하는 소리. 지나가거나 이륙하는 소리이되 아예 지나가거나 이륙해 버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 집요하게 이어지는 그 소리. 250의 부친 말씀이 환청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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