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마지막 패를 던지듯 벌겋게 상기된 이파리를 떨군다 한평생 머리채를 휘둘리던 풀잎도 가을볕에 색 바랜 몸을 뉘고 편하다 억척스레 살아온 저마다의 무게를 땅 위에 반납하는 가벼움이다 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 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 … (중략) … 잎 다 진 청미래 덤불 가시에 찢긴 저녁 해가 선혈이 낭자하게 저문다 잡목숲 질러 식은 조각달 물고 가는 저 부리 길고 뾰족한 홀아비 새는 거느리는 식솔이 몇이나 될까 내 빈 속이 문득 궤양처럼 쓰리다
어서 그만 내려가자, 더 늦기 전에
가을의 정취는 쓸쓸함이고, 정취의 최고조는 늦가을이 제격이다. 꽃도 지고 잎도 지고 이제는 가을마저 지려고 하는 때다. 이제, 이 시의 제목과 딱 일치하는 계절이 됐다. 나이가 다르면 가을이 다르게 읽힌다. 어린아이의 가을은 어떠한가. 그들은 우수수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재미있다. 열매를 보면 따고 싶고, 예쁜 낙엽을 보면 줍고 싶다. 봄의 나이에 바라보는 가을은 그저 새롭고 흥미로우리라.
그러나 가을의 나이에 바라보는 가을은 어떠할까. 그것은 퍽 적나라하다. 내가 가을이니까, 보고 싶지 않아도 가을의 민낯을 보고 만다. 지는 때이고 내려놓는 때이다. 잃어버릴 때이고 잃어야 할 때다. 나이 말고는 더는 얻을 것이 없는 것만 같을 때, 우리는 가을의 표정으로 가을을 말한다. 가을의 삼위일체라고나 할까. 가을의 나이에, 가을의 표정을 한 시인이, 가을을 말하는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쓸쓸함만 말하지는 않는다. 다행하게도, 그는 내려놓는 것은 퍽 편안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깨끗하게 가벼워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내려놓는 것이 꼭 잃는 것만은 아니구나. 한 가지를 배운다. 이 배움을 텅 빈 마음에게 쥐여 주고 싶다.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을에는 잘 내려놓기라는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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