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가지만 토하고 삼킬 줄 알며, 때에 따르니 청탁을 가리지 않네. 속이 비어 있어 족히 물건을 포용하니, 흰 바탕은 하늘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네(守口能呑吐 隨時任濁淸 中虛足容物 質白見天成).
―이정구 ‘술에 취하여 병에 쓰다(醉書甁面)’
이화여대 박물관은 한국 도자기 컬렉션으로 국내외에 이름나 있다. 이 중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백자 항아리가 있다. 단순한 외형과 차분한 백색의 그것도 사랑스럽지만 철화로 짙게 앞뒷면에 간결하게 그려낸 매화와 대나무는 흰 바탕에 수묵으로 그린 문기 넘치는 묵화 같다. 문양들 사이에 쓰인 위의 시구는 항아리의 담백한 자태와 조화로워 볼 때마다 그 앞에 오래 머물곤 한다. 이 시는 조선의 한문 4대가 중 한 명인 월사 이정구(1564∼1635)가 취중에 술병에 쓴 시다.
특히 속이 비어 있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백자 항아리의 미덕을 언급한 구절은 안을 비워야만 무언가를 담고 저장할 수 있는 그릇 본연의 속성을 말한다. 비워내야 또 다른 용도와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물건. 맑은 술이든 탁한 술이든 모두 포용하는 속 넓은 백자 항아리.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릇의 용량이 크고 작음을 헤아리던 ‘도량(度量)’이라는 말이 현대에도 사람의 그것에 비유되고 있음에랴.
욕심이 없음을 표현할 때 ‘마음을 비웠다’고 하며 마음을 비우고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대함을 ‘허심탄회’라 한다. 집착과 사사로움을 덜어내고 내게 소용없는 것은 내주며 늘 누구든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비워놓고 기다리는 삶. 때론 신이 사랑으로 내게 깃들거나 사람이 내 안에 다정함으로 온기를 더해줄 수 있을 테니. 내 속이 넓어야 타인의 마음도 받아주고 실수도 묻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마음의 용량이 다 찼습니다. 비울까요?” 오늘도 스스로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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