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수도권 지역구에서 내년도 총선 출마를 선언한 40대 정치 신인이다. 얼마 전 만난 그에게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1분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같이 답했다.
영남 지역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30대 정치 신인 B 씨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창의적인 홍보와 열심히 몸으로 뛰는 모습으로 지역에 나를 알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작은 사무실도 임대료 및 유지비로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은 든다”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당 경선 후보 기탁금, 중앙선관위 기탁금 등 돈 문제를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고 했다.
대한민국엔 많은 종류의 정치인이 있다. 선출직만 해도 군수,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 그 직역이 다양하다. 하지만 이 많은 정치인 중에서 언제든 후원금을 모아 정치 활동에 쓸 수 있는 정치인은 딱 한 종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다.
중앙선관위도 이 같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개선 의견을 내고 있지만 공직선거 입후보 예정자의 선거 관련 비용 모금 허용 등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10년 넘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현역 의원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의원(초선)=젊은 세대의 정치 진출 통로인 기초의회 의원들에게도 후원금 모금 기회를 확대해 줘야죠.
B 의원(3선)=정책이나 자기의 식견을 가지고 승부를 걸어야지 후원금 받아 가지고 돈 많이 쓰는 사람이 당선되게 해서 되겠어요?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위해 2017년 하반기 국회에서 열린 정치발전특별위원회 1소위 회의록에 나타난 한 대목이다.
한 해 최대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현역 국회의원은 모금한 정치자금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을 많게는 수백 개씩 지역구에 내걸면서도 잠재적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한사코 “후보 개인의 정책과 실력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법적 선거비용 안에서의 후원금 모금조차 그 시기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내야 하는 기탁금(총선의 경우 1500만 원)도 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들에겐 큰 진입 장벽이다. 후보자 난립을 막기 위해 만든 규정이지만 사실상 ‘청년 진출 방지법’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은 기탁금 납부제도가 없다. ‘고액 기탁금’이 필요한 곳은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청년 후보에게는 선거구 주민 몇 % 이상의 서명으로 후보 등록 자격을 준다든지, 기탁금을 대폭 감면해 준다든지 얼마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청년의 ‘정치 활동’을 온갖 규제로 묶어 놓고 한국에서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같은 젊고 참신한 정치 리더가 나올 때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거 때마다 영입된 새로운 청년들은 대부분 ‘깜작 홍보’ 대상으로 활용되고, 소모된 뒤 잊혀진다. “청년 영입”을 외치기 이전에 청년들이 정치권에서 스스로 뜻을 펼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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