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내가 지켜야 하나[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12>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3일 03시 00분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은 ‘논현동 먹자골목’이라고 서울에서 손꼽히는 유흥가다. 놀이터나 학원보다 유흥업소가 훨씬 많고, 학교 주변은 그 유흥업소를 찾는 어른들의 차량과 꽉 막히는 대로를 우회하려는 차량으로 늘 혼잡한 편이다. 늘 혼잡해서 그런지 과속방지턱은커녕 차량을 통제하는 신호등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조차 없다. 그나마 등굣길에는 교통 지도 자원봉사자와 경찰이 있지만, 하굣길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슈퍼마리오가 장애물을 뛰어넘듯 갓길에 불법 주차된 차량과 보행자를 발견하고도 멈출 줄 모르는 차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목적지까지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무법천지의 하굣길은 신나는 게임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 게임은 진짜 목숨을 담보로 한다.

아이가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등하굣길 안전부터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측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구청에 알아보라고 했고, 우여곡절 끝에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올렸다. 얼마 뒤 구청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로 여건상 등하굣길에 과속방지턱이나 횡단보도에 신호등 설치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안전보다 주변 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먼저였다. 그 대신 구청에서는 등하굣길 갓길 바닥에 붉은 벽돌 무늬를 그리고 ‘통학로’라는 글자를 새겨줬다. 그 통학로는 경찰이 동원된 등교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간이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은 적어도 상습 교통 정체 구간의 우회로이자 주변 상권의 이해관계가 먼저인 논현동 먹자골목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내 아이는 오로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하고, 그 덕분에 아내와 내가 지난 5년 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차 조심’이다. 아이가 3학년이 되자 다른 아이들처럼 혼자 등하교 하겠다고 해서 거의 한 학기 동안 아이 뒤를 몰래 따라다녔다. 학교 측으로부터 교통 지도 자원봉사 요청이 있을 때는 적극 협조했다. 등하굣길에 과속방지턱이나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는 얘기다.

마침 이번 정기국회에는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이 올라와있다. 하지만 여야는 서로를 탓하며 그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 논현동 먹자골목처럼 아이들의 안전보다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먼저인 셈이고, 이건 어쩌면 어른들의 게임이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상대방보다 더 많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게임. 다만 이 게임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실패해도 슈퍼마리오처럼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다. 이보다 신나는 게임이 또 있을까. 플레이어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 게임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은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권용득 만화가
#유흥가#주변 상권#차량 통제#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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