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은 ‘논현동 먹자골목’이라고 서울에서 손꼽히는 유흥가다. 놀이터나 학원보다 유흥업소가 훨씬 많고, 학교 주변은 그 유흥업소를 찾는 어른들의 차량과 꽉 막히는 대로를 우회하려는 차량으로 늘 혼잡한 편이다. 늘 혼잡해서 그런지 과속방지턱은커녕 차량을 통제하는 신호등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조차 없다. 그나마 등굣길에는 교통 지도 자원봉사자와 경찰이 있지만, 하굣길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슈퍼마리오가 장애물을 뛰어넘듯 갓길에 불법 주차된 차량과 보행자를 발견하고도 멈출 줄 모르는 차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목적지까지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무법천지의 하굣길은 신나는 게임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 게임은 진짜 목숨을 담보로 한다.
아이가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등하굣길 안전부터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측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구청에 알아보라고 했고, 우여곡절 끝에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올렸다. 얼마 뒤 구청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로 여건상 등하굣길에 과속방지턱이나 횡단보도에 신호등 설치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안전보다 주변 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먼저였다. 그 대신 구청에서는 등하굣길 갓길 바닥에 붉은 벽돌 무늬를 그리고 ‘통학로’라는 글자를 새겨줬다. 그 통학로는 경찰이 동원된 등교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간이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은 적어도 상습 교통 정체 구간의 우회로이자 주변 상권의 이해관계가 먼저인 논현동 먹자골목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내 아이는 오로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하고, 그 덕분에 아내와 내가 지난 5년 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차 조심’이다. 아이가 3학년이 되자 다른 아이들처럼 혼자 등하교 하겠다고 해서 거의 한 학기 동안 아이 뒤를 몰래 따라다녔다. 학교 측으로부터 교통 지도 자원봉사 요청이 있을 때는 적극 협조했다. 등하굣길에 과속방지턱이나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는 얘기다.
마침 이번 정기국회에는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이 올라와있다. 하지만 여야는 서로를 탓하며 그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 논현동 먹자골목처럼 아이들의 안전보다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먼저인 셈이고, 이건 어쩌면 어른들의 게임이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상대방보다 더 많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게임. 다만 이 게임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실패해도 슈퍼마리오처럼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다. 이보다 신나는 게임이 또 있을까. 플레이어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 게임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은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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