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의 눈물과 공천 딜레마[여의도 25시/황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2016년 4월 총선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이해찬 대표. 동아일보DB
2016년 4월 총선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이해찬 대표. 동아일보DB
황형준 정치부 기자
황형준 정치부 기자
“공천에서 배제된 뒤 세종시로 내려와 서러운 마음에 아내와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뛰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이 전한 이해찬 대표의 일화(逸話)다. 이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공천에서 배제되자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정권 교체가 그의 출마 명분이었다.

혈혈단신으로 탈당한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무소속이 된 그는 2번 대신 6번을 달고 선거를 뛰었다. 자신이 모신 DJ와 노 전 대통령이 만든 당, 대표를 맡았던 당에서 쫓겨나 민주당 2번 후보와 싸워야 하는 심경도 복잡했을 것이다. 세종시 당선으로 명예 회복한 그는 6개월 뒤 복당했고 지난해 8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공천에 배제됐던 이 대표가 3년여 만에 공천권을 쥐고 칼을 휘두르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같은 공천 배제의 경험이 반영됐기 때문일까. 이 대표는 “인위적 물갈이는 없다”며 세대교체론이나 물갈이 공천에 대한 반감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이 대표는 10월 말 기자간담회에서도 “사람을 어떻게 물갈이를 한다고 하느냐”며 “인위적으로 물갈이한다, 쫓아낸다는 예의 없는 표현은 자제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 대신 이 대표는 ‘시스템 공천’과 ‘경선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 신인에게 20∼25%(여성, 청년, 장애인은 최대 25%)의 가산점을 주고 당 자체 평가에서 하위 20%에 속하는 현역 의원에게 감점을 주면 경선을 통해 현역 의원 30%가 교체되는 등 자연스러운 물갈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 신인이 아무리 가산점을 받는다고 해도 신인들이 지역을 오래 관리해 온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과의 경선에서 이길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인위적 물갈이 없이 현역 교체 비율을 높일 수 있겠냐”며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 불출마를 공식화한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 의원 4명과 비례대표 의원 5명 등 9명. 당 총선기획단은 지난달 28일 불출마 지역구를 포함한 전략지역에 청년과 여성 도전자를 최우선 공천하기로 했지만 당장 이들을 공천할 수 있는 지역이 몇 곳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대표가 자신의 경험과 동병상련 때문에 중진 물갈이와 세대교체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 나온 세대교체 바람은 이 대표가 주도한 게 아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등 친문(친문재인) 핵심과 초선 비례의원들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DJ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접 젊은 피 수혈론 등을 내걸고 공천에서 세대교체를 주도한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런 영향인지 5선 이상 의원 7명 중 이 대표를 제외하곤 아직까지 아무도 용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당의 세대교체를 위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는 목소리도 없다. “중진이 다 불출마해버리면 누가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하냐”라거나 “지역구를 야당에 뺏길 수 있다”며 서로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당 대표가 쓸 수 있는 ‘전략공천’ 카드도 혁신이나 세대교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당에서 전략공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출마 예상자는 대부분 관료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한 ‘신친문’으로 연령도 50대 후반, 60대 초반에 속한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민주당 의원들은 “야당 복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년 총선 전망에 대해서도 140∼150석을 전망하며 최소한 1당의 지위를 놓치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현역 의원 50%를 교체하겠다”고 파격 선언했지만 민주당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반사이익만 기대하며 국민들의 세대교체 요구와 혁신 공천 노력을 게을리하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눈물 없이 승리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이 대표가 잘 알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