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연동형 비례제로 독재 굳힌 헝가리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3일 14시 00분


공수처법이 3일 국회에 부의됐다. 집권당은 군소야당 소원대로 선거법을 바꾸는 대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통해 정권 차원의 비리는 묻어버릴 태세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막겠다고 고군분투 중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사법부는 무력화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정권교체는 불가능해질 공산이 크다. 연동형 선거제를 집권세력에 유리하게 악용한 헝가리가 딱 그런 경우다.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를 둘러싼 입장을 양당 원내 대표가 각각 밝히고 있다. 왼쪽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 오른쪽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뉴시스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를 둘러싼 입장을 양당 원내 대표가 각각 밝히고 있다. 왼쪽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 오른쪽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뉴시스

● 집권세력에 악용되는 선거제 개편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의 김한나 연구원은 “헝가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 거대한 지배적 정당이 등장해 독점적 지위를 공고화했다”고 최근 논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치적 결과: 헝가리, 루마니아의 선거제도 연구’에서 지적했다.

작년 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제출한 한국정당학회 최종보고서 역시 “헝가리의 선거제도 개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집권세력의 다수 의석 확보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악용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 역시 김 연구원이 참여했다.

선거제도 개편, 특히 계산이 복잡한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집권세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헝가리가 보여준다. 독일처럼 연동제를 잘하는 나라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 헝가리의 독재자, 연동제 도입해 연속 압승

연동형 비례제를 쉽게 말하면 소수파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소정당을 상당수 국회에 들이면서도 집권세력이 손해 안 보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개돼지가 알 수 없도록 표 계산을 복잡하게 하면 식으로다.

헝가리가 그랬다. 1989년 민주화 이후 2010년 선거법 개정 이전까지는 우리처럼 혼합형 선거제(지역구+비례대표제)였다. 비례의석은 병립형(지역구 당선자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더하는 것)과 연동형을 혼합해 의원수를 계산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동아일보DB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동아일보DB
동유럽의 새로운 독재자로 꼽히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2010년 집권 후 선거법을 고쳐 영구집권의 길을 굳혔다. 연동형만 채택하되, 지역구의 사표(死票)는 집권당에 가중치를 주는 산식(算式)으로 비례대표를 계산해 2014년과 2018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다.

● 비례의석 작으면 제1당 유리하다

다수당제이면서 비례대표 의석이 상대적으로 작을 때는 제1당이 과다하게 대표된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문은 분석한다. 그 결과가 헝가리의 피데스 같은 지배적 정당의 영구집권화였다.

전체 의석 중 단순다수제로 뽑는 지역구가 106석, 비례대표제가 93석인 헝가리가 이렇다면 지역구 225명에 비례대표 75명인 우리 선거법 개정안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지역구를 줄일 수 없다는 현역의원들의 고집에 비례대표를 50석쯤에서 맞추자는 얘기도 나온다. 비례대표를 달랑 3석 늘리려면 구태여 선거제를 바꿀 이유가 뭔가. 어차피 개정안은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도 없는 변종인데.

● 연동제 개정안에 민주당 꼼수 더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2일 라디오에 나와 “우리 의석수를 줄이더라도 소수파를 배려해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맞다”고 큰 양보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득표율 41.09%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60%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나? 대선에선 사표(死票)를 외면하면서 총선에선 비례성을 인정해야 하는가?(뒤에 다시 썼지만 그래서 비례대표제를 하는 나라는 주로 내각책임제다)

게다가 민주당은 손해 볼 것도 없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였던 김종민은 “100% 연동형은 소수정당 배려제가 될 우려가 있어 연동수준을 낮췄다”고 고백한 바 있다.

연동률을 50%로 심플하게 낮춘 것도 아니다. 비례대표 의석의 절반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연동형으로 배분하되 나머지 절반은 병립형으로 배분해 더불어민주당이 따블로 이득을 보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다.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부분 연동형 다수대표제’라는 게 정확하다고 음선필 홍익대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했을 정도다.

● 패스트트랙 야합 야당은 ‘준여당’인가

군소정당은 ‘준연동제’라도 지금보다 의석수를 늘릴 수 있어 감지덕지다. 집권세력은 공수처법도 더불어 처리할 수 있어 따따블이다. 두 법안을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이 묘혈(墓穴)을 판 묘수인지는 두고 볼 일이되, 여기 야합한 군소야당들은 ‘준여당’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패스트트랙도 미국선 외교와 국방 법안, 영국은 경제 위기 때나 테러관련 법안만 가능하다. ‘동물국회’ 버릇을 고치자고 법안에 제한을 두지 않고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게 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 차라리 내각제 개헌을 하든가

다당제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대개 서구의 의원내각제 국가들이다. 제1당이 과반을 넘지 못하면 연정(聯政)을 해서 총리와 내각을 배출하니 협치를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다.

대통령제가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는 미국처럼 다수대표제로 의원을 뽑는 양당제를 한다. 대통령제에 비례대표제로 다당제를 만든 나라들은 대부분 중남미에 있다. 1979년 이후 대통령 6명 중 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경제도 남미로 갈 판인데 문재인 정부는 정치체제까지 일치시킬 모양이다. 굳이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싶다면 차라리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게 낫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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