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주택 공급 열쇠 쥔 재건축… 규제 풀되 이익환수 강화를[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4일 03시 00분


재개발-재건축 순기능 살리는 법… 서울 주택공급 ‘유일한 수단’ 부상
물량 줄자 경쟁 심해져 수주 잡음… 한남3구역은 검찰수사 의뢰까지
시장과열 주범 지목 ‘규제 옥죄기’… 4~6년 후 새집 공급 절벽 우려
규제만으로 집값 안정화 못시켜… 日도쿄는 도시재생 차원 접근

유원모 산업2부 기자
유원모 산업2부 기자
“먹거리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고 있어요. 그러니 서울에서 수주할 수 있는 유일한 물량인 재건축·재개발에 목숨을 겁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장에서 잇따라 불거진 잡음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검찰 수사 의뢰, 입찰보증금 몰수, 시공사 선정 투표 무효 논란까지. 최근 서울의 정비사업 현장 가운데 원활하게 사업 진행이 이뤄지는 경우를 찾아보는 게 어려울 정도다.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은 지난달 26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로부터 사실상 ‘입찰 무효’ 판정을 받았다. 국토부가 입찰에 참여한 3개 건설사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내세운 ‘임대주택 제로(0)’, ‘분양가 7200만 원 보장’ ‘이주비 무이자 지원’ 등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남3구역은 공사비만 1조888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정비사업장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공사비 9200억 원 규모의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은 올해 10월 입찰에 참여했던 현대건설의 자격을 박탈하고 입찰 보증금 1000억 원을 몰수했고, 서울 구로구 고척4구역 재개발은 올해 6월 진행된 시공사 선정 투표 과정에서 도장이 아닌 볼펜으로 표기한 용지를 무효표로 볼 것인지를 놓고 대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사이에 법적 다툼이 벌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받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최근 부동산 시장 혼란의 진앙이 되고 있다.

○ 30년 만에 서울 신규 주택 공급 책임지는 재건축·재개발

재건축·재개발 제도가 도입된 것은 30년 전 일이다. 1987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개정되면서 재건축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이듬해 12월 서울 마포구 마포아파트가 기존 6층, 642채 규모였던 단지를 15층, 930채의 새 아파트로 탈바꿈시키는 재건축 계획안이 처음으로 사업인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으로의 폭발적 인구 집중과 이로 인한 주택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건설과 함께 재건축·재개발을 대안으로 꼽았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기존 노후 주택을 정비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재건축은 기반시설이 양호한 지역에서 노후한 건축물만 새롭게 짓는 것이고, 재개발은 기존 주택뿐 아니라 도로·상하수도와 같은 도시기반시설까지 함께 정비하는 사업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별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으면서 노후·불량 주거시설을 개선하고, 신규 주택 공급을 대거 늘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정책 수단이다. 주민들 역시 헌집을 새집으로 바꾸면서 개발이익까지 안겨주니 환영할 수밖에 없다. 1960, 70년대에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는 용적률이 100% 미만이었지만 1988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주거지역의 용적률이 400%로 껑충 뛰었다. 이로 인해 고층 아파트 재건축이 가능해지면서 일반분양에 따른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해졌다.

건설사들 입장에서도 택지 구입을 위한 별도의 비용과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형화된 구역 안에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대규모 택지 개발이 사라진 서울에서는 재건축 등 정비사업장이 사실상 신규 주택을 책임지다시피 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공급되는 분양 물량 중 정비사업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71%를 기록한 데 이어 2015∼2017년에는 80% 이상을 차지했고, 올해 10월까지 집계한 결과 76%나 됐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에서의 택지 공급은 2010년대 초반 분양이 대부분 완료된 강서구 마곡지구와 송파구 위례신도시 이후로 사실상 전무하다”며 “최근 서울의 공공택지는 철도역사나 자투리 부지 등 소규모라 재건축·재개발이 유일한 대규모 신규 주택 공급처”라고 설명했다.

○ 수주 물량 감소로 이전투구 양상

문제는 건설경기 악화로 인해 건설사들의 국내외 수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발생했다. 국토부의 공동주택 분양 승인 실적을 보면 2015년에는 52만5467채에 달했지만 이후 매년 감소해 2016년 46만9058채, 2017년 31만1919채였고 지난해에는 28만2964채 수준으로 급감해 3년 만에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는 10월까지의 실적이 25만여 채에 불과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해외 건설사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인해 사업성이 크게 악화됐고,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면서 공공 발주도 줄어든 상황”이라며 “주택 사업은 워낙 노하우가 쌓여 있고, 사업비 회수가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점에서 건설사들이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들의 경쟁은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7년 9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이사비 7000만 원 무상 지원’과 같은 파격적인 현금 지원 조건이 제시되기도 했다.

조합 측의 과도한 개발이익 추구도 정비시장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분석도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조합이 자신들의 아파트가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길 원하면서 과도한 특혜설계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기본적으로 대형 건설사들의 시공 능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주비 지원이나 무상 옵션 등 꼼수 경쟁이 판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각종 규제로 예측 가능성 떨어지며 혼란 커져

이 같은 흐름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정부가 내놓은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는 크게 4가지다. 2018년 1월 1일부터 부활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안전진단 강화와 지난달부터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가 정비사업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면서 혼란과 불안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재건축·재개발은 지난한 인허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사업”이라며 “워낙 잦은 규제 추가로 인해 조합 측에서도 새로운 제도에 맞는 최적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합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정부는 재건축 사업의 구조안정성 항목을 20%에서 50%로 올리는 등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을 발표했는데 올해 12월까지 1년 10개월간 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의 재건축 단지는 서초구 방배 삼호아파트 1곳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4∼6년 후 서울 신규 주택의 공급 단절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한 피해는 주택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정부가 규제를 가하면서 공급 축소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지금도 서울의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신고가를 경신하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재건축·재개발도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바라봐야

재건축과 재개발을 무조건 옥죄는 방식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규 주택 공급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정비사업에 대한 규제를 일정 부분 풀어주고, 개발이익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사들의 불법적인 수주를 막기 위한 대책은 강화해야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허가 지연 등은 정부가 지양해야 한다”며 “조합이나 건설사에서 가져가는 과도한 이익을 세금이나 공공 기여를 통해 환수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노후주택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이 정비사업을 틀어막는 방식은 도시 슬럼화만 양산할 수 있다”며 “도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도시재생특구를 운영해 용적률을 최대 870%까지 허용하는 일본 도쿄(東京) 사례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규제만으로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을 방지하고 집값을 안정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적절하게 관리해 부족한 주택 공급을 늘려주는 정책 당국의 묘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유원모 산업2부 기자 onemore@donga.com
#재건축#부동산 규제#건설#주택 공급#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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