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비즈니스, 1980년대 대학에 도입
한국대학 최근 발표에서 100위 내 5개 포함
내부 혁신 없이 논문 양적 팽창의 결과
100위권 밖 이스라엘 대학들, 노벨상 7명에
1600개 기업 설립해 10만 개 일자리 창출
허수 랭킹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 성찰해야
단 하루의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몇십만 명의 젊은이를 한 줄로 세우는 일에 익숙한 탓인지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랭킹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 포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등과 함께 랭킹 섹션도 있는데, 여기에는 많이 본 뉴스 등이 순서대로 나타나 있다. 잘 팔리는 서적은 물론이고 식당들에도 랭킹이 매겨져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랭킹을 따지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주관적 판단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랭킹 작업 효시의 하나는 음악잡지 빌보드라 여겨지는데, 인기 팝송의 순위를 매겨 이를 매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1936년이다. 처음에는 방송 횟수에 따라 순위를 결정했지만 요즈음엔 다운로드 횟수 그리고 유튜브 조회 수 등도 합산되고 있다. 사실 일주일마다 좋아하는 팝송을 바꾸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랭킹은 새로운 유행이나 1위 곡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결국 랭킹 발표는 팝송 시장을 넓히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며 아울러 사람들을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매크로를 이용한 기계적 댓글 올리기로 선거 판에서 특정 뉴스를 가장 관심 받는 것으로 만들어 여론을 조작한 일도 랭킹의 위력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랭킹 비즈니스가 대학 사회에 들어온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미국 내의 대학들을 평가해 순위를 발표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후 다른 많은 신문사들도 같은 일에 뛰어들었다. 그 후 영국의 사업가 한 사람이 QS란 이름의 평가 전문 회사를 차려 경영대의 순위를 발표하다가 2004년부터는 세계의 유수 대학들을 모두 한 줄로 세우기 시작했다.
랭킹은 대학 간의 경쟁을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그러나 대학은 팝송처럼 잠시 유행하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며 또 그 순위가 매년 크게 바뀔 까닭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평가 기관들은 비즈니스를 위해 끊임없이 크고 작은 순위 변화를 만들어 내는 듯싶다. 이런 평가 순위에 일희일비하는 우리 대학들의 신세가 어쩌면 애처롭다.
여하튼 처음으로 세계 대학 랭킹이 발표되던 2004년 우리나라의 대학 이름은 100위 안에 하나도 없었고, 이에 대해 상당한 사회적 질타가 있었다. 2005년에 서울대가 93위가 되었고, 그 후 우리 대학들은 계속적으로 순위가 상승해 최근 발표된 2020년 QS 랭킹에서는 100위 안에 모두 5개의 대학이 들어갔다. 서울대는 37위 그리고 KAIST는 41위가 되었으니 놀랄 만한 발전이다. 그사이 대학들의 내부 혁신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재정은 지난 10여 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크게 축소된 상황이니, 사실 이런 도약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대학은 국가 발전의 엔진이며 그런 측면에서 대학 경쟁력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평가 순위 상승을 위한 우리 대학들의 노력은 마치 수능에서 정답 고르기를 철저히 연습해 좋은 성적을 얻으려는 수험생과 흡사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대학들은 의미 없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높은 순위를 위해 논문의 양적 팽창을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는 발표 논문 수에서는 세계 10위지만 피인용 상위 10% 숫자로는 세계 600위권의 대학이다.
이스라엘의 헤브루대와 이스라엘공대(테크니온)는 각각 대한민국의 서울대와 KAIST에 상응하는 곳이다. 그런데 헤브루대는 21세기 들어 이미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이 대학 역사학과 유발 하라리 교수가 저술한 ‘호모 데우스’ 등은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다. 아울러 컴퓨터과 교수가 창업한 모빌아이란 벤처는 2년 전 인텔이 사상 최대 금액인 17조 원을 주고 인수해 갔다.
그리고 테크니온 졸업생들은 지난 20년간 1600여 개의 기업을 세우고 이를 운영하면서 무려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2020년 QS 평가 162위인 헤브루대와 257위인 테크니온의 모습이다. 이 대학들은 랭킹에 별로 관심도 없다. 우리 대학들도 이제는 허수에 불과한 랭킹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도 이를 독려하고 성원해야 한다. 자국 대학의 낮은 랭킹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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