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억원 찍은 김환기 ‘우주’… 뉴욕 화단에선 얼마나 부를까?[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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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국제무대 몸값 높이기… “작품 가격이 국가 경쟁력” 환영 속
“국내용 거품 가격” 반론 적지 않아… 국내 시장 ‘향수적 가치’에 치중
일정한 지역-시대에 기반한 인기… 점점 몸값 떨어지는 잔혹사 겪어
국제 시장은 ‘미술사적 가치’ 평가… 시간 갈수록 작품 가격 치솟아
미학적-사회적 가치와 연결돼야… 세계시장서도 제대로 인정받아

지난달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 화백의 ‘우주’가 전시되고 낙찰되는 장면. 132억 원에 낙찰된 ‘우주’가 이 가격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해외 컬렉터의 소장뿐 아니라 작품의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가 보편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크리스티코리아 제공
지난달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 화백의 ‘우주’가 전시되고 낙찰되는 장면. 132억 원에 낙찰된 ‘우주’가 이 가격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해외 컬렉터의 소장뿐 아니라 작품의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가 보편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크리스티코리아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김민 문화부 기자
국내 미술 시장의 ‘인기 작가 잔혹사’에서 김환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가 한국 미술품 경매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작품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약 131억8570만 원)에 낙찰됐다.

미술계 반응은 엇갈렸다. “작품 가격은 국가 경쟁력”이라며 환영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가격이 정말 타당한가”, “국내용 가격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내용 가격’이라는 표현을 인식한 듯 크리스티코리아 측은 “구매자가 서양인”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용 가격’이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왜 피해야 하는 표현으로 여겨지는 걸까?

○ 국내 시장 ‘인기 작가’ 잔혹사

‘국내용 가격’이 금기어처럼 된 것은 한국 미술 시장의 최근 수십 년간 흐름과 연관이 있다. 그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기 작가가 배출됐지만 4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이 ‘잊혀진 사람’이 됐다. 이 때문에 국내용 가격은 미술계에서 은연중에 ‘거품’ 혹은 ‘신뢰할 수 없는 가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1970년대 인기 작가였던 최영림 화백(1916∼1985)이 한 예다. 물감에 흙을 섞어 만든 투박한 마티에르와 한복을 입고 있는 인물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여겨져 인기리에 팔렸다. 당시 작품은 호당 30만 원을 호가했다. 1972년 5급 공무원(현재 9급에 해당) 1호봉 월급이 1만7300원, 잠실 시영아파트 분양가가 230만∼250만 원이었다. 통상 거래되는 10호 작품 가격이 300만 원이니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인 셈이었다.

그런데 올해 7월 최 화백의 10호 작품은 케이옥션에서 900만 원에 거래됐다. 숫자만 보면 가격이 3배로 오른 것 같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가격은 폭락했다.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은 월 196만 원. 47년 전에 비해 약 113배로 올랐다. 공무원 월급을 기준으로 할 때 최 화백의 작품도 적어도 3억4000만 원에는 거래가 되어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 화백만 해당되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미술협회장, 홍익대학장을 지내며 최고 권위와 인기를 누렸던 이마동 화백(1906∼1981)도 이제는 잊혀진 사람이 됐다. 이 화백의 10호 작품도 4월 케이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300만 원에 거래됐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해 온 요소에 문제가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 한국, 감흥 바탕으로 한 감정적 가치 우선


어떤 작품은 10만 원에도 겨우 팔리는가 하면, 다른 작품은 100만∼1000만 원에 판매된다. 혹은 수백억 원을 주고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화가의 손이 만드는 기교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인이 작품의 가격을 결정한다.

국제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격은 미술사적 가치, 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 미디어적 가치, 조형적 가치, 감정적 가치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미술사적 가치다. 흔히 뉴스로 접하는 ‘초고가’ 작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 요인이기도 하다.

미술사적 가치란 말 그대로 역사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가, 입체파 작가 피카소처럼 시대의 중요한 맥락을 담고, 후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작품들은 좋은 고전 문학처럼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기 때문에 갈수록 가격이 더 높아진다.

그 다음으로는 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 미디어적 가치, 조형적 가치가 작품에 따라 여러 비중으로 작용한다. 미학적 가치를 지닌 대표적 작품은 1960년대 미국의 미니멀리즘 예술이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저서를 출간했을 정도로 미학적 기반이 뚜렷했다. 특히 당시 새롭게 부상한 현상학의 흐름과 맞물린 작품들로 가치를 인정받고 미술사에 편입됐다. 사회적 가치는 작품이 속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지를, 조형적 가치는 작품 자체의 기교와 조형 언어를 의미한다. 미디어적 가치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 설치작품이나 빈센트 반 고흐의 ‘불운한 예술가상’처럼 대중에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춘 것을 말한다.

감정적 가치는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가격 결정 요소다. 보는 사람의 일시적 감흥으로 매겨지는 것이 바로 감정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이 감정적 가치에 속하는 ‘향수적 가치’가 주요하게 작용해왔다. 이 향수적 가치의 작용을 김환기 화백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향수적 가치’의 계보

김환기는 ‘한국인 추상 미술가’로 볼 수 있다. 그는 1913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중학교와 도쿄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를 졸업했다. 이때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1963년부터 11년 동안은 미국 뉴욕에 머물렀다. 그리고 1974년, 생을 마감했다.

작품은 구체적 형상을 단순화해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는 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 영국의 벤 니컬슨 등 모더니즘 화가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특히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 도자기(백자)나 달, 산과 여인 등의 소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재들은 추상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향수적 가치에 가깝다.

김환기 작품의 ‘향수적 가치’는 박수근과 이중섭이 그 계보를 이어왔다. 말 그대로 ‘어릴 적 내 고향’, ‘어려웠던 그 시절’처럼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특정 세대에게 어필하는 가치가 바로 향수적 가치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빨래터나 질박한 풍경, 그리고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에서 그려진 ‘예술가’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이중섭 화백의 ‘황소’도 막연한 한국적 가치로 인정을 받았다.

향수적 가치는 두 가지 이유로 국제적 경쟁력을 획득하기 힘들다. 첫 번째는 향수가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한정된 지역 안에서도 정서는 시간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인기 작가의 작품도 가치의 하락세를 걷는다. 박수근, 이중섭은 워낙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고 남긴 작품이 많지 않아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빨래터’나 ‘황소’를 한국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그것이 유지될지는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

최영림 화백과 이마동 화백의 작품도 이들과 유사한 향수적 가치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가치는 시대적 흐름과 국내 미술 시장의 개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을 기점으로 해외 미술이 급격하게 수입된 것도 연관이 있다. 국내 미술 시장에 해외 작품이 유입되며 점차 ‘국내용 가격’이 통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학력이나 인맥이 국내 미술 시장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젊은 컬렉터들은 온라인을 통해 국제 미술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본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 외적 가치 기준은 장기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환기 ‘우주’의 가격, 132억 원은 시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을까? 한국 미술 시장의 경쟁력과 신뢰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주’가 담고 있는 가치가 국제적 미술사 흐름과 맞물린 한국 미술사적 가치나 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연결고리를 맺어야 할 것이다.

만약 작품의 가치가 ‘향수적 가치’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국경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뉴욕의 한 딜러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김환기 화백의 작품에서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특히 애돌프 고틀리브의 영향이 보인다. 그런데 고틀리브보다 늦은 시기에 작업한 작품에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김환기#우주#미술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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